영수증이 몇 장 굴러다니길래 나란히 놓아봤습니다. 석 장이 거의 똑같더라고요.
품목도 같고 순서도 비슷했어요. 저는 장을 보러 간 게 아니라 그냥 같은 길을 다시 걸었던 셈이군요.
매대 앞에 서면 저는 오래 안 봅니다.
늘 사던 자리로 가서 손이 먼저 움직여요. 새로 나온 게 옆에 있어도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고르는 게 아니라 지나가면서 집어 오는 쪽인걸요.
선택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지친 사람에게는 하나 더 얹힌 짐이 된다.
전에는 이걸 게으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게 봅니다.
무엇을 고르려면 비교를 해야 하고, 비교를 하려면 내가 뭘 원하는지 먼저 알아야 하잖아요. 그게 생각보다 힘이 드는 일이더라고요. 하루 종일 이미 여러 번 고르고 온 사람한테는 남은 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같은 것만 담기는 건 취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날 고르는 힘을 다 쓰고 왔기 때문이겠지요.
이유를 알아도 영수증 석 장을 보고 있으면 조금 쓸쓸해요.
같은 것만 먹고 같은 길로만 다니고 있구나 싶은 겁니다. 새로운 걸 안 고르는 게 아니라 못 고르는 상태라는 걸 아니까 더 그렇고요.
그래서 요즘은 한 가지만 다르게 담아봅니다.
전부 바꾸려고 하면 또 고르는 일이 되니까요. 늘 사던 것 그대로 담고 마지막에 딱 하나만 안 사던 걸로 집습니다. 그게 뭐가 됐든 상관없어요. 실패해도 하나뿐이니까 부담이 없는걸요.
그 하나를 집을 때는 잠깐 고르는 사람이 됩니다.
물론 한동안 하다가 또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도 저는 이제 그걸 실패라고 안 봐요. 그런 시기가 있는 거겠지요. 고르는 힘이 다시 좀 모이면 또 하나쯤 집게 되고요.
오늘 장바구니에 늘 같은 것만 담기셨다면 그건 무기력한 게 아닙니다. 고르는 힘을 다른 데서 이미 쓰고 오신 거겠지요.
저도 그런 날은 그냥 같은 걸 담고 옵니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하늘 한 번 보고요. 그것도 고른 것에 들어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