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첩을 받고도 안 나가는 인물을 보더니 묻더라고. 이게 거절이 되냐고.
어느 첩이냐에 따라 달라. 그 얘기를 해볼게.
영웅첩 얘기를 전에 적었어. 큰일이 생기면 맹이나 문파에서 만들어 돌리는 거라고.
핵심은 여럿한테 같이 돌린다는 거야. 나 하나한테만 온 게 아니지. 그래서 안 가도 그게 나를 거절한 게 안 돼. 그냥 그날 사정이 안 됐던 거야.
부른 쪽도 몇 명이 안 오는 걸 미리 계산하고 돌려. 그러니까 서운할 일이 없어.
비무첩 얘기도 전에 적었어. 싸우자고 미리 보내는 종이라고.
이건 딱 한 사람한테 가. 날과 자리와 조건이 적혀 있고, 그걸 받은 사람 이름이 적혀 있지.
그러니까 안 나가면 그게 기록이 돼. 소문이 먼저 도착하는 판이니까 안 나갔다는 게 돌아.
아까 그 손님 질문의 답이 이거야.
세 번째가 요령이야. 청탁 얘기를 전에 적었어. 강호엔 거절하는 법이 있었다고. 자격이 안 된다고 하거나 지금은 다른 일이 걸려 있다고 하는 거지. 비무첩도 그 방식으로 물러설 수 있어.
받는 쪽만 다른 게 아니야. 보내는 쪽도 걸리는 게 달라.
영웅첩은 부르는 쪽이 안 무안해. 여럿한테 돌렸으니까 몇 명이 안 와도 티가 안 나지. 모이자는 말을 못 꺼낸다는 얘기를 그 글에 적었는데, 형식이 그 무안함을 막아주는 거야.
비무첩은 반대야. 보내는 순간 내가 저놈이랑 붙겠다고 공표한 거야. 상대가 안 나오면 나만 우스워질 수도 있고. 그래서 아무한테나 안 보내.
작품에서 이 둘이 같이 나오는 대목이 있어. 영웅첩으로 사람을 다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비무첩을 던지는 식이지.
무림대회 얘기를 전에 적었어. 모이는 게 목적이고 겨루는 건 명분이라고. 그런데 모인 자리에서 지목이 나오면 그때부터 구경꾼이 있는 싸움이 되지. 물러날 데가 없어져.
강호엔 판사가 없다고 내가 여러 번 적었는데, 그래서 여럿이 보는 자리가 판정을 대신해. 두 첩이 같이 나오는 게 그 장치야.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종이가 오가는 대목을 대충 넘겼어.
지금은 하나만 봐. 그 첩이 몇 명한테 갔나. 여럿이면 영웅첩이고 하나면 비무첩이야. 그거 하나면 안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가 잡혀.
어떤 첩이 왔는지 말해봐. 그 편이 어디로 갈지 짚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