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읽던 걸 세어보더니 웃더라고. 이 작품엔 평범한 짐승이 한 마리도 안 나온다고.
말은 나오는데 명마고, 새가 나오면 영조야. 그냥 개는 없어. 이게 우연이 아니야.
오래 살아서 영험해진 짐승이야. 사람 말을 알아듣거나, 내단을 품고 있거나, 사람보다 세거나.
무협에서 나오는 자리는 대개 셋이야.
첫 번째가 제일 많아. 기연이 왜 항상 동굴에 있냐는 얘기를 전에 했잖아. 그 동굴을 지키고 있는 게 대개 영물이야.
여기가 핵심이야. 왜 그냥 짐승이 안 나오냐.
무협의 인물들이 너무 세거든. 경공으로 지붕을 타고 다니는 놈한테 사나운 개가 무슨 위협이 되겠어. 산에서 늑대를 만나도 그냥 지나가지. 이야기가 안 만들어져.
그러니까 짐승이 나오려면 적어도 사람만큼은 세야 해. 그래야 장면이 성립하니까. 그게 영물인 거야.
한 가지 예외가 말이야. 말은 그냥 나오기도 해.
그런데 잘 보면 말도 대개 이름이 붙어 있거나 명마라고 불려. 왜냐면 거리를 접는 수단이거든. 거리 단위 얘기를 할 때 하루에 삼백 리를 갔다면 사람 얘기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때 말을 갈아탄 거야.
즉 말은 짐승이 아니라 이동 장치로 쓰여. 그래서 좋은 말이냐 아니냐만 중요하고 성격은 안 그려.
두 번째 자리를 좀 더 보자. 영물이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경우.
이게 편해 보이는데 잘 쓴 작품은 값을 붙여. 먹이가 귀하거나, 사람들이 무서워해서 마을에 못 들어가거나, 그놈 때문에 눈에 띄어서 쫓기거나.
공짜로 센 게 없다는 게 이 장르의 규칙이라고 내가 계속 말하잖아. 동료도 공짜가 아니야. 그냥 세기만 하고 값이 없으면 그건 편의지.
세 번째로, 영물을 잡아서 내단을 얻는 전개가 있어. 영약 얘기랑 이어지는 자리야.
여기서 잘 쓴 작품은 한 겹을 더 얹어. 그 영물도 오래 산 존재라는 걸 보여줘. 그러면 잡는 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게 되지. 얻는 대신 뭘 없앤 거니까.
무협이 사람 사라지는 장르라는 얘기를 전에 했는데, 영물이 사라지는 것도 같은 무게로 그리면 그 작품은 잘 쓴 거야. 그냥 재료로만 쓰면 좀 얄팍하고.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처음엔 짐승이 나오면 그냥 배경으로 봤어.
지금은 그놈이 뭘 하는 자리인지를 봐. 재료냐 동료냐 벽이냐. 셋 중에 뭔지만 알면 그 대목이 어디로 갈지가 대충 잡혀.
어느 짐승이 기억나는지 말해봐. 그놈이 뭘 하는 자리였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