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읽은 작품을 다섯 개쯤 세어봤어. 세다가 웃더라고.
다섯 다 주인공 부모가 없었어. 죽었거나, 어릴 때 헤어졌거나, 아예 안 나오거나.
이유가 분명해. 부모가 있으면 주인공이 못 떠나.
무협 주인공은 왜 다 산에서 내려오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하산은 출발이 아니라 시험이라고. 그런데 집에 부모가 있으면 하산 자체가 안 돼. 말려야 하고 물어봐야 하니까.
강호는 떠도는 판이야. 자주 옮겨 다니는 게 기본이고. 돌아갈 집이 있으면 떠도는 얘기가 안 되지.
두 번째 이유가 더 커. 부모가 있으면 주인공이 결정을 안 해도 돼.
무협에서 인물이 서는 자리가 어디냐면, 아무도 안 정해주는 자리야. 강호엔 판사가 없다고 내가 여러 번 적었잖아. 그래서 스스로 정해야 하고, 그 정하는 게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보여줘.
부모가 있으면 그걸 대신 해줘. 그러면 인물이 안 드러나. 어려워야 인물이 나오는데 그 어려움을 없애버리는 거야.
그럼 완전히 비워두냐. 아니야. 자리는 남기고 사람만 바꿔.
무협 사부는 왜 아버지보다 세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사문이 학교가 아니라 집이라고. 그게 이 얘기야. 부모를 지우고 그 자리에 사부를 넣은 거지.
그러면 좋은 점이 있어. 사부는 헤어질 수 있어. 죽거나 떠나거나 등을 돌리거나. 부모는 그게 어색한데 사부는 자연스럽거든. 버릴 수 있는 부모를 만들어둔 셈이야.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야. 나오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
세 번째가 예외야. 오대세가 정리를 적을 때 세가는 안에서 싸운다고 썼잖아. 그 싸움이 부모 자식 싸움인 경우가 많아. 세가물에서만 부모가 오래 살아 있어.
호심경 얘기를 적을 때 안 나오는 걸 세어보면 이 장르가 뭘 지키려는지 보인다고 썼어.
갑옷이 없고, 활이 조연이고, 계절이 안 바뀌고, 부모가 없어. 이걸 모아놓고 보면 하나로 모여. 주인공을 혼자 세워두려고 하는 거야. 기댈 데를 하나씩 치우는 거지.
부모가 나오는 작품 알면 말해줘. 그거 드물어서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