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읽은 작품 여섯의 첫 화를 대봤어. 대다가 멈추더라고.
시작이 다 비슷하다는 거야. 맞아. 여는 사건이 다섯쯤밖에 없어.
멸문지화 — 집안이나 문파가 통째로 날아가. 복수가 시계가 되지 하산 — 산에서 내려와. 배운 걸 처음 써보는 자리야 기연 — 뭘 줍거나 어디에 떨어져. 자격을 얻는 사건이고 파문 — 쫓겨나. 가진 걸 잃고 시작하는 거지 회귀와 빙의 — 다시 시작해. 아는 건 있고 몸은 처음이거나
각각 따로 적은 적이 있어. 붙여놓고 보니 다섯이 하는 일이 하나야.
이게 공통점이야. 다섯 사건이 전부 기댈 데를 치우는 일이야.
멸문지화는 가족을 치우고, 하산은 사부 곁을 떠나게 하고, 파문은 소속을 지우고, 회귀는 아는 사람들을 낯설게 만들어.
무협 부모가 왜 다 없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기댈 데를 하나씩 치우는 게 이 장르 방식이라고. 여는 사건이 그 치우는 일을 한 번에 해.
다섯 중에 하나가 좀 달라. 기연은 치우는 게 아니라 주는 거야.
그래서 기연으로만 시작하는 작품은 좀 심심해. 얻기만 하고 잃은 게 없으니까. 대개는 기연을 다른 하나랑 붙여 써. 멸문지화를 당하고 도망치다 동굴에 떨어지는 식이지.
영약 얘기를 전에 적었어. 공짜로 세지는 장면만큼 김빠지는 게 없다고. 여는 사건도 같아. 잃은 게 있어야 얻은 게 값을 해.
이게 실제로 쓸모 있는 대목이야. 첫 화만 보면 뒤가 대충 보여.
무협 표지 얘기를 전에 적었어. 표지 말고 첫 화의 시작 지점을 보라고. 그 시작 지점이 이 다섯 중 하나야.
한쪽으로 몰지는 않을게. 다섯 밖에서 시작하는 작품도 있어.
그냥 객잔에 앉아 있다가 시작하거나, 이미 다 이룬 상태에서 시작하거나. 그런데 그런 건 시작이 느려서 접히기 쉬워. 첫 화만 보고 접는 게 손해일까 하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무협은 세 번째 장면에서 갈린다고 썼잖아.
그러니까 다섯이 관습으로 굳은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빨리 굴러가야 해서야.
뭘 잡았는지 말해봐. 어떤 사건으로 여는지 짚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