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종이 뒷면에 인물 이름을 적고 있었어. 처음엔 죽 나열하더라고.
그러다 화살표를 그리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갑자기 빨라졌어. 적는 속도가 아니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어.
무협 입문에서 막히는 게 한자어가 아니라 이름이라고 내가 전에 적었어. 이름이 너무 많다고.
그리고 인물 이름은 외우지 말고 자리로 기억하라고도 적었지. 그런데 자리로 기억하는 방법을 안 적었더라고. 오늘 그걸 적을게.
전부 그릴 필요 없어. 셋만 그려.
첫째, 사문 줄. 누가 누구한테 배웠는지. 위아래로 그려. 사문 문파 차이를 어제 적었는데, 이게 배운 줄이야.
둘째, 소속 묶음. 같은 문파끼리 동그라미를 쳐. 이건 옆으로 묶는 거고.
셋째, 원한 화살표. 누가 누구한테 빚이 있는지. 이게 제일 중요해.
셋 중에 세 번째가 제일 값을 해.
무협에서 인물이 왜 움직이냐면 대개 갚을 게 있어서야. 협이 정의로운 게 아니라 갚는 거라고 내가 여러 번 적었잖아. 그러니까 화살표를 따라가면 그놈이 다음에 어디로 갈지가 보여.
멸문지화가 첫 화에 나오는 것도 그래. 복수는 목표가 아니라 시계라고 적었는데, 그 시계가 화살표야.
이건 안 그려도 돼. 그리면 오히려 복잡해져.
두 번째가 함정이야. 별호는 누가 붙여주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별호랑 본명이 같은 사람이면 한 칸에 둘 다 적어놔. 따로 그리면 두 사람인 줄 알게 돼.
이게 요령인데, 처음부터 그리지 마.
한 열 편쯤 읽고 나서 그려. 그때쯤이면 누가 계속 나오는지가 보이거든. 처음에 그리면 단역까지 다 적게 돼서 종이가 지저분해져.
무협 오디오북 얘기를 전에 적었어. 처음 열 편은 눈으로 보라고 했잖아. 인물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그 열 편 다음에 그리면 딱 맞아.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지금도 그려. 안 그리면 못 따라가.
창피한 게 아니야. 이름이 백 개 나오는 걸 다 외우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잘 읽는 게 아니라 안 헷갈리게 읽는 게 목표잖아.
지금 읽는 게 뭔지 말해봐. 뭘 그리면 되는지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