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쓰다 막혔다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아무리 써도 남의 글 같다고요. 『차라투스트라』의 한 장을 펼쳐 드렸더니 한참 읽으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제 글엔 제가 없었네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에 이 제목의 장이 있습니다. 첫 문장이 이렇죠.
쓰인 모든 것 가운데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강한 비유라 놀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피는 상처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가리키죠. 제 삶을 통과한 것만 쓰라는 말입니다.
겪은 것을 씁니다. 남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 제가 지나온 것이요. 값을 치른 생각을 씁니다. 쉽게 얻은 결론이 아니라, 오래 붙들고 씨름한 생각이죠. 꾸미지 않습니다. 멋있어 보이는 문장보다 정직한 문장을 고릅니다.
그 손님의 자기소개서가 남의 글 같았던 까닭도 여기 있었을 겁니다. 잘 쓴 문장들을 모았지만, 그 안에 손님이 지나온 하루가 없었던 거죠.
같은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남의 피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읽는 게으름뱅이를 미워한다.
피로 쓴 글은 피로 읽어야 한다는 거죠. 훑어 넘기지 말고, 제 삶에 대 보며 읽으라는 겁니다. 앞서 니체 느리게 읽기를 적었는데, 그 부탁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니체는 또 피와 잠언으로 쓰는 사람은 읽히기보다 외워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이죠. 한 번 읽고 잊히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의 안에 오래 남는 글이요.
남의 잉크로 쓴 문장은 종이 위에 머문다. 네 삶으로 쓴 문장만이 읽는 자의 안으로 건너간다.
쓰기 전에 제 장면 하나를 떠올리십시오. 일반적인 말 대신 제가 겪은 한 장면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멋진 문장을 하나 지워 보십시오. 지운 자리에 제 말이 들어올 때가 많더군요. 읽을 때는 한 문장에 머무십시오. 쓴 사람이 무엇을 치르고 그 문장을 얻었는지 생각하면서요.
두 주 뒤 그 손님이 오셔서 붙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고요. 멋진 말은 다 빼고,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있었던 일 하나만 썼다고 하시더군요.
잘 쓴 글보다 제가 담긴 글이 오래 남습니다. 저는 제 문장 하나하나에 제가 지나온 하루를 담아, 제 삶으로 쓴 글을 조금씩 늘려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