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표지를 보던 손님이 웃으셨습니다. "너 자신이 되어라." 이미 나인데 뭐가 되라는 거예요? 맞는 질문이더군요. 그 어긋남 안에 이 말의 뜻이 들어 있죠.
이 말은 니체가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의 송가에 나오는 구절에서 왔죠. 원래 뜻은 대략 "배워서 알게 된 그대로의 네가 되어라"에 가깝습니다.
니체는 젊을 때부터 이 구절을 아꼈더군요. 『즐거운 학문』에서는 양심이 무엇을 말하느냐고 묻고,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답하죠. 말년의 『이 사람을 보라』에는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앞서 서른 앞둔 조급함을 적으며 이 이야기를 짧게 했는데, 오늘은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자신"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가 아닙니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가능성까지 포함한 저죠.
그러니 "너 자신이 되어라"는 지금에 머물라는 말이 아니라, 제 안에 있던 것을 끝까지 길러 내라는 말입니다. 씨앗이 나무가 되듯이요.
흔히 "진짜 나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어딘가 숨어 있는 진짜 나를 발견하면 된다는 듯이요.
니체의 말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찾아지는 게 아니라 되어 가는 존재라는 거죠.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는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는 옆길과 잘못된 길, 망설임과 낭비까지 다 쓰인다고 말합니다. 헤맨 시간조차 그 길의 일부라는 겁니다.
너를 찾으러 멀리 가지 마라. 너는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다 자라지 않았을 뿐이다.
"진짜 나"를 찾느라 지치지 마십시오. 대신 오늘 조금 더 자라고 싶은 쪽을 하나 고르면 됩니다. 헤맨 시간을 버리지 마십시오. 니체 말대로, 잘못 든 길도 결국 쓰입니다. 남이 정한 "나다움"과 구분하십시오. 앞서 나답게 살라는 말이 이기적으로 들리는 마음을 적었는데, 니체의 말은 남과 비교한 다름이 아니라 제 안의 가능성에 관한 말입니다.
그 손님께 핀다로스와 니체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셨죠. 그럼 되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하시면서요. 그 자기계발서 대신 『이 사람을 보라』를 빌려 가셨습니다.
저는 이미 완성된 무엇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헤맨 길까지 다 쓰며, 제 안에 있던 것을 끝까지 길러 내는 쪽으로 제가 되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