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상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말씀드린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가시고도 한참 그 자리를 보고 있었죠.
제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며칠을 곱씹었습니다. 맞는 말을 했는데 왜 마음이 안 편할까요.
여기가 핵심입니다. 거절할 때 우리는 요청을 거절하는데 상대는 자기가 거절당했다고 느낍니다.
말하는 쪽과 듣는 쪽이 다른 것을 세는 겁니다. 나는 일 하나를 못 한다고 했는데, 상대의 얼굴에는 사람이 밀려난 표정이 뜨죠.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가 한 일이 갑자기 커집니다.
그래서 거절이 어려운 건 말을 못 해서가 아닙니다. 그 표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겁니다.
거절하고 며칠을 되돌리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되뇌는 문장이 비슷합니다. 더 좋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문장이죠.
그런데 이건 거절 자체를 후회하는 게 아닙니다. 방식을 후회하는 겁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거의 다 뒤쪽입니다. 그리고 뒤쪽이면 그 결정은 다시 해도 같습니다.
거절을 못 하는 걸 두고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들 하죠. 저는 그 설명이 정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거절이 어려운 사람은 대개 관계를 성과로 관리해온 사람입니다. 잘 받아주면 좋은 사람으로 남고, 한 번 못 해주면 그 평판이 무너진다고 배운 겁니다. 그러니 매번 응하는 게 여림이 아니라 평판을 지키는 노동인 셈이죠.
이렇게 보면 왜 그렇게 피곤한지도 설명이 됩니다. 노동이니까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만 나쁜 사람이 된다.
여기서 실제로 쓰는 방법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유를 길게 붙이지 마십시오.
이유를 많이 대면 상대가 그 이유를 하나씩 반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거절이 협상으로 바뀌고, 결국 응하게 되거나 더 나쁘게 끝나죠.
이 셋이면 충분합니다. 짧은 거절이 차가운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덜 붙잡아둡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거절하고 나서 편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불편함이 남는다는 건 상대를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죠. 그 감각까지 없애면 거절은 쉬워지겠지만 다른 게 사라집니다. 저는 그 불편함을 없애려 하기보다 며칠 안에 지나가는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이후로 저는 규정을 설명할 때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제가 정한 게 아니라 여기 규칙이 그렇다고요. 그러면 상대도 저도 그 자리를 덜 사람 대 사람으로 안 겪게 되더군요.
거절이 편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게 제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그 하나를 정하고 나면 다음 거절은 조금 덜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