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고른 책을 어머니가 도로 꽂고 다른 걸 쥐여 주시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 책을 안 펴고 두 시간을 앉아 있었죠. 안 읽은 게 아니라 안 읽기로 한 겁니다.
어린이실에서 오래 보면 이게 갈리죠.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대신 자기가 고른 게 아닌 책 앞에서 멈추는 아이는 아주 많죠. 만화를 빼앗기고 동화를 받은 아이, 좋아하는 주제를 놔두고 학년에 맞는 걸 받은 아이요.
그 아이들은 읽는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읽을 이유가 없는 거죠.
읽으라는 말을 자주 들은 아이일수록 안 읽죠. 이건 어린이실에서 거의 예외가 없더군요.
이유는 단순하죠. 시키는 순간 그건 할 일이 됩니다. 할 일은 최소한만 하고 끝내려 하는 게 사람입니다. 앞서 권장도서 목록 얘기에서도 적었는데, 목록이 해야 할 일이 되면 그 목록이 읽기를 막습니다.
독서록을 쓰게 하는 것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읽고 나서 일이 하나 더 생기면 안 읽는 쪽이 이득이 되니까요.
방법 얘기보다 걸림돌부터 보시는 게 빠르죠. 이런 게 겹쳐 있으면 아무리 시켜도 안 됩니다.
수준이 안 맞습니다. 한 쪽에 모르는 낱말이 예닐곱 개면 그 책은 못 읽습니다. 학년 표시가 아니라 이걸로 보셔야 하죠.
시간이 없습니다. 학원과 숙제로 하루가 차 있으면 읽을 자리가 없죠. 없는 시간에 읽으라고 하면 부담만 늘죠.
주변에 읽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가장 큽니다. 어른이 폰을 보면서 아이한테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그 말은 잘 안 듣습니다.
어린이실에서 잘 되는 집을 보면 공통점이 있죠.
고르는 걸 아이한테 맡깁니다. 만화든 도감이든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고르는 경험이 붙어야 다음이 있죠.
같이 있습니다. 옆에서 어른이 자기 책을 봅니다. 읽으라는 말은 안 합니다.
끊어도 둡니다. 반쯤 읽고 덮어도 그냥 두시면 됩니다. 다 읽으라는 말이 붙으면 다음 책을 안 잡습니다.
읽는 힘은 시켜서 자라지 않는다. 고를 수 있는 자리에서 자란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드리고 싶군요. 이건 몇 주로 안 됩니다.
몇 해 동안 안 읽던 아이가 도서관에 오는 게 편해지는 데만 한참 걸리죠. 그동안은 책을 안 펴도 그냥 두시는 게 맞죠. 공간이 편해지는 게 먼저고 책은 그다음입니다.
두 시간을 앉아만 있던 그 아이는 몇 달 뒤에 자기가 고른 책을 들고 왔습니다. 만화였고요. 저는 그게 시작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