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보던 손님이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저녁 산책길에 자기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있다고요. 니체도 그랬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랬습니다. 그것도 책 한 권의 처음과 끝을 그렇게 열고 닫았죠.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는 니체가 1880년에 낸 짧은 글 모음입니다. 나중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둘째 권에 함께 묶였죠. 앞서 자유정신을 적으며 그 책을 다뤘는데, 이 책도 그 시절 니체가 떠돌며 쓴 글들입니다.
책의 맨 앞과 맨 뒤에 방랑자와 그림자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짧은 생각들이 수백 개 놓여 있죠.
책은 그림자가 먼저 말을 거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네 목소리를 못 들었으니 이번엔 말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요.
방랑자는 반가워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기죠.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책의 끝에서, 해가 지며 그림자가 사라지기 직전 둘은 작별 인사를 나누죠.
이 장면은 혼자 걷는 사람이 자기 안의 목소리와 나누는 대화로 읽힙니다. 앞서 조용하면 불안한 마음을 적었는데, 그 고요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바로 이 그림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니체가 거듭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들에 좋은 이웃이 되자는 거죠.
먹는 것, 사는 곳, 날씨, 하루의 리듬, 쉬는 법. 사람들은 먼 진리나 큰 문제에 매달리느라 이런 가까운 것들을 하찮게 여긴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삶을 만드는 건 그 가까운 것들이라고요. 앞서 신체는 큰 이성이라는 말을 적었는데, 같은 생각이 이 책에서 이미 자라고 있었죠.
먼 별을 보느라 발밑을 잊은 자는 넘어진다. 가장 가까운 것을 돌보는 자의 걸음이 가장 멀리 간다.
오늘 가장 가까운 것 하나를 돌보십시오. 밥 한 끼를 천천히 먹거나, 방 한쪽을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걸을 때 제 그림자와 대화해 보십시오. 우습게 들려도, 제 안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됩니다. 큰 문제 앞에서 막힐 땐 작은 것부터 하십시오. 니체는 그 순서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손님은 그 책을 빌려 가셨습니다. 다음에 오셔서 말씀하셨죠. 요즘 저녁 산책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림자랑 얘기하다 보면 하루가 정리된다고요.
큰 질문은 늘 멀리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장 가까운 것들부터 잘 돌보며, 그 작은 돌봄들로 제 하루를 하나씩 세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