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억울함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십 년 동안 성실하게, 착하게 살았는데 돌아온 게 없다고요. 그러다 이 장을 읽으시고는 한참 웃으셨죠. 제가 착했던 게 아니라 거래했던 거네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에 있는 장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덕을 쌓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죠.
너희 덕 있는 자들이여, 너희는 아직도 대가를 원하는가? 덕을 쌓았으니 보상을 받고, 오늘 참았으니 언젠가 갚음을 받겠다는 마음 말입니다.
니체는 이 마음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대가를 바라는 덕은 덕이 아니라 거래에 가깝다고요. 그 손님이 스스로 깨달은 것처럼요.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덕은 무엇일까요. 같은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덕이 너희 자신이기를. 어머니가 아이 안에 있듯이.
덕이 바깥에 걸린 상장 같은 게 아니라,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보상이 있든 없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제 덕이라는 겁니다.
억울해집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그동안의 착함이 다 손해처럼 느껴지죠. 앞서 애쓴 만큼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그 서운함의 뿌리가 여기 있기도 합니다. 남을 탓하게 됩니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안 하느냐고요. 앞서 르상티망을 적었는데, 그 원한으로 넘어가기 쉽더군요. 착함이 지칩니다. 대가를 기다리는 착함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대가를 기다리는 덕은 남의 손에 매여 있다. 제 안에서 솟는 덕만이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빛난다.
착한 일 하나를 아무도 모르게 해 보십시오. 보상이 없어도 마음이 어떤지 보는 겁니다. 억울함이 들면 물어보십시오.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했나, 받으려고 했나. 하고 싶어서 하는 일만 남기십시오. 나머지는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야 착함이 지치지 않죠.
그 손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십 년 동안 한 일 중에 진짜 하고 싶어서 한 일도 있었다고요. 그건 억울하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착하게 사는 날들에 대가가 늘 따라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보상을 기다리는 착함 대신, 제 안에서 저절로 솟는 덕을 하나씩 길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