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 구석에서 이어폰을 낀 채 입만 움직이시는 분을 봤습니다. 화면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죠.
혼잣말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회의 중이셨습니다. 소리를 거의 안 내려고 애쓰시는 게 보이더군요. 요즘 이런 분이 부쩍 늘었죠.
예전에는 도서관에 오시는 이유가 대체로 둘이었습니다. 책을 빌리거나, 공부를 하거나.
요즘은 셋째가 생겼습니다. 조용한 자리가 필요해서 오시는 겁니다. 집에서는 소리가 새고 카페는 시끄러우니까요. 손님 한 분은 회의 한 시간을 위해 갈 데가 여기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도서관 규칙은 원래 아주 단순합니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 한 줄로 오래 굴러왔죠.
그런데 화상 회의를 하시려면 말을 해야 합니다. 규칙을 지키려면 목적을 못 이루고, 목적을 이루려면 규칙을 어기게 되는 겁니다. 그 사이에서 이어폰을 끼고 입만 움직이시는 장면이 나온 거죠.
이건 그분이 잘못하신 게 아닙니다. 공간이 새로운 쓰임을 아직 못 따라간 것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이렇게 바꾸는 관들이 있다고 합니다.
말해도 되는 방을 따로 두거나, 시간을 쪼개 빌려주는 작은 부스를 놓거나, 아예 층을 갈라 위층은 조용한 자리 아래층은 말해도 되는 자리로 나누는 식이죠. 노트북 쓰는 자리와 안 쓰는 자리를 구분한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관에도 그런 논의가 있죠.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쓰임이 늘어나니 어디를 떼어줄지가 문제죠.
저는 이 변화를 나쁘게만 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값을 안 내고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면 놀랍도록 적습니다. 앉으려면 무언가를 시켜야 하고, 오래 있으려면 눈치를 봐야 하죠. 그런 곳들 사이에서 도서관은 아무것도 안 사고 몇 시간을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조용함을 찾아 여기까지 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게 그거니까요.
값을 치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지면, 사람은 머무는 법 자체를 잊는다.
한 가지는 짚어야겠습니다. 그 조용함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한 분이 회의를 하시면 옆자리 열 분의 조용함이 줄어들죠. 같은 것을 찾아온 사람들끼리 그것을 나눠 쓰는 자리라서, 여기서는 배려가 예의가 아니라 자원 관리에 가깝죠.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께 안내를 드립니다. 통화 가능한 자리가 어디인지, 없으면 어느 시간대가 한산한지요. 나가시라는 말씀은 안 드립니다. 그건 이 공간이 원래 하려던 일이 아니니까요.
그날 회의를 마치고 나가시면서 그분이 죄송하다고 하셨죠.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책을 안 빌리고 나가시는 분들이 미안해하시는 걸 자주 봅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빌려주는 곳이면서 자리를 빌려주는 곳입니다. 뒤쪽이 앞쪽보다 덜 중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러 오시든 여기 있을 자격은 오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그 자리를 다른 분과 나눠 쓰고 계시다는 것만 기억해주시면, 저희는 계속 이 자리를 열어둘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