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에 도서관 삼층에 갔거든. 자리는 꽉 찼는데 사람은 반밖에 없어.
가방만 덩그러니 있는 자리가 열 개는 됐다니까.
솔직히 처음엔 화가 났어. 자리 없어서 서 있는 애들이 뒤에 줄을 섰잖아.
한 자리를 정해놓고 봤어. 창가 쪽에 회색 가방 하나. 얼마나 자리를 비우나 보려고.
삼십 분, 한 시간, 한 시간 반. 안 오더라.
두 시간쯤 지나서 궁금해서 지나가면서 슬쩍 봤거든.
책이 펼쳐진 채였는데, 처음에 봤을 때랑 같은 페이지였어. 두 시간 전이랑 똑같은 자리. 형광펜 그은 줄도 그대로고.
그러니까 그 애는 두 시간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 두 시간 전에 이미 못 하고 있었던 거지.
세 시간쯤 됐을 때 주인이 왔어.
눈이 빨갛더라. 앉지도 않고 가방만 들고 그냥 갔다니까. 책은 챙기다가 한 번 떨어뜨렸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자리 맡아놨다고 뭐라 하려던 마음이 그때 다 없어졌거든.
그날 이후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자리를 맡아두는 건 얌체 짓이기 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잖아. 나 아직 안 끝났다고, 이따 다시 온다고 자기한테 말해두는 거야.
가방을 아예 안 두고 나가는 애가 진짜 안 오는 애더라.
우리 동아리방에도 비슷한 게 있어.
한동안 안 나오는 애 물건이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안 치운다. 컵도 그대로 두고 노트도 그대로 둔다니까. 치우면 진짜 안 올 것 같아서.
칼손 컵에 곰팡이 슬면 어쩌냐.
돌부처 그건 내가 씻어놨어.
돌부처는 저런 걸 말 안 하고 해놓는다니까. 아무튼 자리는 그대로 둔다.
물건이 남아 있으면 아직 돌아올 자리가 있는 거잖아. 그거 하나 남겨두는 게 뭐 어렵냐.
오늘 어디 자리 맡아두고 못 돌아간 데가 있으면, 내일 가서 가방부터 챙겨와라. 돈은 몰라도 마음은 같이 봐줄 수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