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을 다섯 개나 땄다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공부는 자신 있다고요. 그런데 한숨을 쉬며 덧붙이셨죠. 근데 제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말에 『도덕의 계보』 첫 쪽을 펼쳐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른다. 우리 인식하는 자들은, 우리 자신에게조차.
손님은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셨습니다.
이 문장은 『도덕의 계보』 서문 맨 앞에 있습니다. 앞서 르상티망과 니체 관점주의를 적으며 이 책을 여러 번 빌렸는데, 그 책의 문을 여는 말이 이거였죠.
니체는 이어서 말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자신을 찾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언젠가 우리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늘 바깥을 봅니다. 무언가를 알아 가는 사람은 대개 시선이 바깥을 향하죠. 책, 세상, 남의 생각을 향해서요. 바쁩니다. 니체는 같은 글에서, 인식하는 자들은 늘 무언가를 모으러 다니느라 정작 제 삶의 순간들을 흘려보낸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미 안다고 여깁니다. 가장 가까운 것이라 따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앞서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뜻을 적으며 가장 가까운 것들을 소홀히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 문장이 흥미로운 건, 철학자가 자기 무지를 먼저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확신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뜻을 적었는데, 니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않는 데서 출발했죠.
그리고 그 고백은 절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모른다는 걸 알아야 찾아 나설 수 있으니까요.
남을 비추던 등불을 한 번은 네 쪽으로 돌려라. 가장 가까운 방이 가장 오래 어두웠다.
바깥 공부를 잠시 멈추는 시간을 두십시오. 하루 십 분이라도 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이요. 좋았던 순간을 적어 보십시오. 무엇이 저를 기쁘게 했는지 모으다 보면 제 취향이 보입니다. 앞서 내 감정을 모르겠는 마음을 적었는데, 그 이름 붙이기 연습과 같죠. 남이 말해 주는 나를 들어 보십시오. 가까운 사람의 눈이 제가 못 보는 저를 비추기도 합니다.
그 손님은 그날 자격증 문제집 대신 에세이 한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남이 자기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다고요. 다음 달에 오셔서, 요즘 매일 밤 좋았던 일 하나를 적는다고 하시더군요.
나를 모르는 날은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바깥을 비추던 등불을 가끔 제 쪽으로 돌려, 가장 가까운 방부터 조금씩 밝혀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