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수첩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직 고민을 표로 정리했다고요. 장점과 단점이 빼곡했죠. 그런데 그 표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근데 싫어." 다 따져 봤는데 마음이 안 정해진다고 하시더군요.
니체는 『즐거운 학문』의 짧은 글에서 이렇게 씁니다.
생각은 우리 감정의 그림자다. 언제나 감정보다 더 어둡고, 더 비어 있고, 더 단순하다.
생각이 먼저고 감정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감정이 먼저 있고 생각은 그 그림자라는 거죠.
그림자는 물체가 있어야 생깁니다. 그리고 물체보다 흐리고 납작하죠. 니체는 생각이 바로 그렇다고 봤습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복잡하고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걸 생각으로, 말로 옮기는 순간 많은 것이 빠져나가죠. 앞서 내 감정을 모르겠는 마음을 적었는데, 감정을 한 단어로 잡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생각은 그 감정의 윤곽만 따라 그릴 뿐이니까요.
그 손님의 표가 바로 그 그림자였습니다. 장단점은 다 적었지만, 그 아래 "근데 싫어"라는 감정은 표 안에 들어가지 않았죠. 니체라면 그 마지막 한 줄이 진짜 물체라고 했을 겁니다.
앞서 신체는 큰 이성 뜻을 적으며, 머리가 모르는 것을 몸이 먼저 안다고 했습니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생각이 이유를 찾기 전에 마음은 이미 답을 품고 있을 때가 많더군요.
그림자를 아무리 붙잡아도 물체는 잡히지 않는다. 생각이 맴돌 때는 그 생각을 드리운 마음 쪽으로 고개를 돌려라.
니체가 감정만 믿으라고 한 건 아닙니다. 다만 생각만으로 결론을 내리려 할 때 놓치는 것이 있다는 거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그 밑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말로 읽힙니다.
장단점 표 아래에 마음의 한 줄을 적어 보십시오. 그 손님처럼요. 생각이 맴돌면 몸에 물어보십시오. 어떤 선택을 떠올릴 때 어깨가 굳는지, 숨이 편한지요. 감정에 이름을 붙이십시오. 앞서 적었듯, 이름을 붙이면 그 감정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손님은 그 한 줄을 오래 들여다보시더니, 무엇이 싫은지 적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오셔서 말씀하셨죠. 싫었던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요. 그걸 알고 나니 결정이 쉬워졌다고 하시더군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림자만 붙잡지 않고, 그 그림자를 드리운 제 마음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답을 찾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