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을 놓고 고민하시다가 더 얇은 쪽을 집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그러셨죠. 이게 요즘 제 수준이라고요.
수준 얘기가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문장이 며칠 남았습니다.
목록을 정리하다 보면 이게 보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책의 쪽수가 줄고 있죠.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인데 몇 해 전 것과 요즘 것의 두께가 눈에 띄게 다릅니다. 한 시간이면 읽는다는 문구를 앞에 내건 책도 늘었고요. 손님들도 그런 책을 먼저 집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들리는 이유와 여기서 보이는 이유가 겹칩니다.
끝까지 읽히는 게 먼저가 됐습니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쌓이는 경험을 다들 하셨거든요. 그러면 다음에는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고르게 되죠.
읽는 시간이 조각나 있습니다. 한 번에 한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십 분에 한 꼭지가 끝나는 구성이 유리합니다.
만드는 쪽에서도 그게 낫습니다. 두꺼운 책은 값이 올라가고 손이 덜 갑니다.
이 흐름을 걱정으로만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두꺼운 게 좋은 책이라는 법은 없죠. 할 말이 적은데 길게 늘인 책도 많고, 그런 책은 오히려 두께가 독자를 속입니다. 핵심만 남긴 얇은 책이 더 정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얇은 책 한 권을 끝낸 경험이 다음 책을 잡게 만듭니다. 못 읽고 덮은 두꺼운 책은 그 반대고요.
한쪽만 말씀드리는 건 공정하지 않겠죠.
얇게 만들려면 뭔가를 덜어내야 합니다. 대개 덜어내는 게 과정입니다. 결론과 요령은 남고, 저자가 그 결론에 이른 길은 빠지죠. 그러면 읽고 나서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쓰려면 안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반대 의견을 다루는 대목이 먼저 빠집니다. 짧게 쓰려면 단정해야 하니까요.
짧은 글은 읽기 쉽지만, 짧아지느라 빠진 것은 읽는 사람이 대신 채워야 한다.
저는 이렇게 권합니다. 얇은 책으로 그 분야에 들어가시고, 그중 계속 궁금해지는 주제 하나만 두꺼운 책으로 가시는 겁니다.
얇은 책은 문이고 두꺼운 책은 방입니다. 문만 여러 개 열고 다니면 들어간 방이 없고, 문 없이 방부터 찾으면 못 들어가죠.
얇은 쪽을 집으셨던 그분께 저는 수준 얘기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그 책을 다 읽고 다음 주에 오셨거든요.
끝까지 읽은 얇은 책이 못 읽은 두꺼운 책보다 나은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