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이 장을 읽다가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늘 괜찮은 척, 잘하는 척 지내 왔다고요. 그러고는 책을 덮으며 말씀하셨죠. 저도 마술사였네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에 있는 장입니다. 앞서 더 높은 인간 뜻을 적으며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모인 손님들을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죠.
차라투스트라는 길에서 땅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며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만납니다. 너무 처절해서 차라투스트라마저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죠.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곧 알아챕니다. 그것이 연기라는 걸요. 그는 노인을 멈춰 세우며 외칩니다. 그만둬라, 너 배우여!
노인은 결국 고백합니다. 자신은 평생 위대한 사람을 연기해 왔다고요. 많은 사람이 그 연기에 속았지만, 이제 그 거짓이 자기 힘을 넘어섰다고 하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서 모든 것이 거짓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이것만은 진짜다.
흥미로운 건 차라투스트라의 반응입니다. 그는 노인을 비웃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죠. 네가 위대하지 않다고 털어놓은 것, 그것이 네 안에서 가장 정직한 것이라고요.
연기를 멈추고 진실을 말한 그 순간을 존중한 겁니다. 앞서 시인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뜻을 적었는데, 니체는 꾸며 낸 깊이를 경계하면서도 그 꾸밈을 스스로 내려놓는 정직은 높이 쳤죠.
위대함을 흉내 내는 자는 끝내 지친다. "나는 아직 그만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만이 진짜 키를 재기 시작한다.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 알아차려 보십시오. 괜찮은 척, 다 아는 척, 바쁜 척 같은 것들이요.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내려놓아 보십시오. "사실 요즘 힘들어." 그 한마디가 연기를 쉬게 합니다. 앞서 괜찮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된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그 짐은 혼자 들기엔 무겁죠. 진짜 키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연기하던 높이가 아니라, 지금 제가 선 자리에서요.
그 손님은 다음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래된 친구에게 처음으로 요즘 힘들다고 했다고요. 친구가 놀라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하시더군요. 둘 다 마술사였다고 웃으셨습니다.
연기하고 싶은 날은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위대함을 흉내 내기보다, 지금의 제 키를 정직하게 재고 거기서부터 한 뼘씩 자라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