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된 책에서 메모지가 나온 적이 있죠. 문장이 열두 줄 적혀 있었죠.
그중 열한 줄이 책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한 줄만 그분의 말이었고요. 저는 그 한 줄이 이 메모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메모를 열심히 하시는데 남는 게 없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이유가 대개 여기 있습니다.
옮겨 적는 일은 고르는 일이 아니거든요. 좋아 보이는 문장을 다 적으면 나중에 그 메모를 다시 봐도 어디가 중요한지 모릅니다. 책을 한 권 더 만든 셈이 되죠.
메모의 값은 양이 아니라 버린 것에서 나옵니다.
저는 세 가지만 적죠.
하나, 내 말로 바꾼 요약. 그 장이 무슨 얘기였는지 한 줄로 적습니다. 옮겨 적는 게 아니라 다시 쓰는 것이라 여기서 이해가 갈립니다. 못 쓰면 안 읽은 겁니다.
둘, 내가 반응한 자리. 동의했는지 반대했는지, 왜 그랬는지요. 이게 나중에 제일 쓸모 있습니다. 책 내용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그때 내 반응은 안 남거든요.
셋, 다음에 찾아볼 것. 모르는 낱말, 궁금해진 주제, 언급된 다른 책이요.
인용을 아예 안 적자는 건 아니죠. 나중에 쓸 문장은 남겨야죠.
다만 길게 옮기지 말고 쪽수만 적으십시오. 몇 쪽 몇 줄이라고 써두면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출처 얘기를 하면서도 적었지만, 쪽수 없는 메모는 나중에 못 씁니다.
메모를 여기저기 흩어놓으면 다시 못 보죠. 저는 이렇게 나눕니다.
여기가 실제로 갈리는 대목입니다. 메모는 다시 봐야 값이 납니다.
책을 덮은 다음 날에 한 번, 그리고 그 책이 필요해질 때 한 번. 이 정도면 됩니다. 다시 볼 계획이 없는 메모는 적는 동안만 도움이 되고 그 뒤로는 짐입니다.
기록은 남기는 일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는 일이다.
그 메모지의 한 줄은 이랬죠. 이 사람 말이 맞나 싶다고요.
저는 그 한 줄이 열한 줄보다 값지다고 봅니다. 옮긴 문장은 책에 그대로 있지만, 그 의심은 그분 안에서만 나온 것이니까요.
적는 양을 줄이시고 그 한 줄을 늘리시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