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에서 묵은 견과류나 크레파스 같은 냄새가 나면 산패가 시작된 거예요. 원두 속 기름이 공기와 만나 변한 거라, 이렇게 된 원두는 잘 내려도 맛이 돌아오지 않아요.
어느 밤에 손님 한 분이 원두 봉지를 들고 오셨어요. 선물로 받았는데 찬장에 넣어 두고 반년을 잊고 있었대요.
"이거 아직 먹어도 돼요?" 하시면서 봉지를 제 코앞에 대 주셨어요. 열자마자 알았어요. 볶은 커피 향 대신 오래된 호두 같은 냄새가 먼저 올라오더라고요.
볶은 원두에는 기름이 들어 있어요. 이 기름이 공기 속 산소와 오래 만나면 성질이 변해요. 식용유를 오래 두면 쩐내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향은 그보다 먼저 날아가요. 그래서 순서가 대개 이래요.
세 번째 단계까지 오면 산패가 꽤 진행된 거예요.
저는 식품 안전을 판정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 부분은 조심스러워요. 다만 곰팡이가 피었거나 눅눅하게 뭉쳐 있다면 바로 버리시라고 말씀드려요.
그게 아니라 냄새만 변한 거라면, 몸보다 맛이 먼저 실망하실 거예요. 그 손님께도 한 잔 내려 드렸는데 한 모금 드시고 웃으시더라고요. "이건 커피가 아니라 기억이네요" 하시면서요.
막을 수는 없고 늦출 수만 있어요.
첫째, 한 번에 많이 사지 마세요. 두세 주 안에 다 마실 만큼이 좋아요.
둘째, 뜯은 봉지는 공기를 빼고 꼭 닫으세요. 밀폐 용기가 있으면 더 좋아요.
셋째, 빛과 열을 피하세요. 가스레인지 옆 찬장은 생각보다 따뜻해요.
원두는 쌓아 두는 물건이 아니라 흘려 보내는 물건이에요. 조금씩 자주 사시는 게 제일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