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지기 친구에게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내셨는데 답이 한참 안 왔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내용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른 말이 관계보다 멀었습니다.
미안함과 죄송함은 둘 다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둘 다 사과이고, 둘 다 상대를 존중합니다. 뜻으로는 안 갈립니다. 그러면 무엇이 갈릴까요?
어느 거리에서 쓰는 말이냐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서로 편한 사이에서 씁니다.
친구, 가족, 오래된 동료. 이 말에는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하면서도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죠.
죄송하다는 말은 윗사람이나 아직 편하지 않은 사이에서 씁니다.
이 말에는 나는 아래에 있고 당신은 위에 있다는 배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의를 갖출 때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에 이 말을 쓰면 배치가 바뀝니다. 사과를 받은 쪽이 갑자기 윗자리에 놓이니까요.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친구가 죄송하다고 하면 받는 쪽은 당황합니다.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동시에 관계가 멀어진 것을 느끼거든요. 그러면 무슨 답을 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괜찮다고 하면 윗사람처럼 되고, 아니라고 하면 사과를 안 받는 게 됩니다. 그래서 답이 늦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사과할 때만 말을 올리면 그 순간 관계가 바뀝니다. 미안한 마음이 커서 더 정중하게 말하고 싶으실 텐데, 크기는 말투가 아니라 내용으로 전하시는 편이 낫겠지요.
가까운 사이면 할 일은 말을 낮추는 것입니다. 미안하다고 하시고, 무엇이 미안한지 한 줄 붙이시면 됩니다. 그 한 줄이 정중함보다 훨씬 크게 도착합니다.
거리가 있는 사이면 죄송하다가 맞습니다. 그때는 말을 편하게 바꾸시면 오히려 가볍게 들립니다.
말의 크기를 올리는 것과 사과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사과인 것은 같습니다. 평소에 쓰던 말인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