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스스로 놀라신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친구가 힘들 땐 밤새 통화를 해 줬는데, 그 친구가 합격했다는 소식엔 축하 문자 한 줄만 보냈다고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한 줄을 보여 드렸습니다.
함께 고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는 것이 친구를 만든다.
이 문장은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남긴 아주 짧은 글입니다. 제목은 그냥 「친구」였죠. 앞서 니체 우정론과 니체 동정 뜻을 적었는데, 니체는 친구 사이에 대해 여러 번 썼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짧고 따뜻한 한 줄이 이것입니다.
슬픔 앞에서는 제가 쓸모 있습니다. 위로하고 들어 주면 무언가를 해 주는 것 같죠. 기쁨 앞에서는 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비교가 끼어듭니다. 앞서 친구의 좋은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은 마음과 남의 불행에 안심되는 마음을 다룬 글이 있는데, 남의 기쁨은 제 처지를 비추기도 하더군요. 질투가 부끄럽습니다. 그 마음을 들킬까 봐 짧게 축하하고 넘어가게 되죠.
니체가 동정을 경계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앞서 적었듯, 동정은 상대를 약한 자리에서 보게 하죠. 그런데 함께 기뻐하는 건 상대를 빛나는 자리에서 보는 일입니다. 그건 제 마음이 넉넉해야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래서 니체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진짜 친구라고 본 겁니다. 슬픔은 누구와도 나눌 수 있지만, 기쁨은 제 질투를 넘어선 사람과만 온전히 나눌 수 있으니까요.
남의 눈물 앞에 앉기는 쉽다. 남의 웃음 앞에 함께 웃기는 넉넉한 마음만이 할 수 있다.
축하를 한 번 더 하십시오. 짧은 문자 대신 전화 한 통, 만나서 한 번 더요. 구체적으로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됐어? 얘기해 줘." 기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도 위로만큼 힘이 됩니다. 질투가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래도 축하하는 쪽을 고르는 거죠. 제 기쁜 소식도 나누십시오. 앞서 축하받는 게 어색한 성격을 적었는데, 기쁨을 나누는 건 주고받는 일입니다.
그 손님은 그날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엔 합격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었다고요. 친구가 그러더랍니다. 네가 이렇게 기뻐해 줄 줄 몰랐다고.
슬픔 곁에 앉는 일만큼, 기쁨 곁에 함께 서는 일도 귀합니다. 저는 남의 웃음 앞에서 제 마음을 넉넉히 열고, 함께 기뻐하는 친구가 되는 쪽을 고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