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혼자 며칠째 그 장면을 돌려 보신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들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무거우셨죠. 그러면 판정을 내린 쪽이 다른 겁니다.
수치심과 자괴감은 둘 다 내가 못나 보이는 상태입니다.
둘 다 그 장면이 떠오르고, 둘 다 몸이 움츠러듭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죄책감과 수치심도 이 근처였죠. 그러면 이 둘은 무엇이 갈릴까요?
그 판정이 밖에서 왔느냐 안에서 왔느냐입니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내가 깎였을 때 옵니다.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봤습니다. 그래서 수치심에는 목격자가 있죠.
그리고 수치심은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때 되살아나더군요. 그 자리를 피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고요.
자괴감은 아무도 모르는데 스스로 내리는 판정입니다.
내가 한 일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나를 낮게 봅니다. 목격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괴감은 피할 자리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내가 같이 가니까요. 며칠째 돌려 보시는 것이 그 자리겠지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습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무거우시면 뒤쪽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수치심은 상대가 있어서 상황이 바뀌면 줄어듭니다. 그 사람들이 잊거나, 다른 자리로 옮기면 잦아들죠.
자괴감은 그렇지 않습니다. 판정한 쪽이 나라서 반박할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계속 확인하게 되고요.
수치심 쪽이면 할 일은 시간을 두는 것입니다. 남들은 생각보다 빨리 잊습니다.
자괴감 쪽이면 할 일은 더 반성하는 게 아닙니다. 그 판정을 문장으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적어보면 대개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문장입니다. 그걸 나는 그때 무엇을 했다로 고쳐 적으시면 크기가 재집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자책과 같은 자리고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못나 보이는 것은 같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