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중 발표 자료의 숫자가 틀린 걸 스스로 발견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얼굴이 빨개졌다고요. 그 분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같은 회의에서 상사가 "이런 것도 못 하면서 무슨 발표냐"고 말해 손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수치스러웠다고 하셨고요. 두 분의 이름을 서로 바꾸면 정확해집니다.
수치심과 모욕감은 둘 다 남들 앞에서 내가 작아지는 감정입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고개가 숙여지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습니다. 작아진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수치심은 내 부족함이나 실수가 드러나서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이고, 모욕감은 누군가 나를 깎아내리거나 업신여겨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수치심의 출발은 나입니다.
숫자를 틀린 것은 내 실수였고, 그걸 가장 먼저 본 것도 나였습니다. 아무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는데 얼굴이 빨개졌죠. 그래서 수치심은 혼자 있어도 남습니다. 내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요.
죄책감과 수치심, 수치심과 자괴감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욕감과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모욕감의 출발은 다른 사람입니다.
상사의 말이 나를 낮췄습니다. 실수가 있었더라도, 그 실수를 넘어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이 들어왔죠. 그래서 모욕감에는 화가 섞이기 쉽습니다. 부당하게 낮춰졌다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손이 떨린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모욕감을 수치심이라고 부르시면 남이 한 일을 내 탓으로 들고 다니게 됩니다. 손이 떨렸던 분은 바로 그 짐을 지고 계셨던 거겠지요.
수치심이라면 실수를 고치면 됩니다. 숫자를 바로잡는 것으로 대개 충분합니다.
모욕감이라면 고칠 것은 내 쪽이 아니라 그 말 쪽입니다. 그 말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작아진 것은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있었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