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읽으면서 첩자가 누구일지 짚어보더라고. 앞부분부터 몇 명을 골라놨어.
결국 처음 찍은 놈이 맞았어. 손님은 좀 시시해했는데, 나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고 봐. 무협에서 세작을 앉히는 자리가 정해져 있거든.
다른 세력이 심어놓은 사람이야. 첩자, 간자라고도 하지.
무협에서 세작이 나오면 대개 이래.
세 번째가 핵심이야.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자리라야 돌아다닐 수 있거든.
여기가 아까 손님 질문의 답이야. 왜 첩자가 꼭 안에 있냐.
밖에서 온 놈은 애초에 못 들어와. 무림은 소개랑 보증으로 굴러가는 판이잖아. 신표가 없으면 아무 데도 못 들어가고, 이름을 대면 어느 문파인지 다 조회가 돼. 강호는 좁아서 낯선 놈이 못 섞여.
그러니까 세작은 반드시 원래 안에 있던 사람이 돌아선 것이거나, 아주 어릴 때부터 심어둔 것이야. 몇 년, 몇십 년 걸리는 작업이지.
이 구조가 그대로 감정이 돼.
밖에서 온 적이 배신하면 그건 배신이 아니잖아. 원래 적이었으니까. 안에 있던 놈이 돌아서야 배신이 돼. 같이 밥 먹고 같이 수련한 놈이니까.
배신은 왜 늘 이인자가 하냐는 얘기를 전에 했잖아. 그것도 같은 얘기야. 가까울수록 배신이 크다는 걸 이 장르가 알고 있는 거지.
이것도 재밌어. 무협에서 세작을 잡는 방식이 몇 가지 없어.
가짜 정보를 흘려서 어디로 새는지 보거나, 아는 사람을 좁혀가면서 하나씩 지우거나. 그런데 이 과정이 문파를 더 망가뜨려. 서로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잘 쓴 작품은 세작을 잡는 게 목표가 아니야. 잡는 동안 문파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그려. 무림맹이 왜 항상 무능하냐는 것도 여기 걸려 있어. 안에서 의심이 돌면 아무것도 못 하거든.
아까 손님이 시시해했잖아. 그런데 나는 그게 나쁘다고 안 봐.
잘 쓴 작품은 누구인지를 숨기는 데 힘을 안 써. 독자가 알아채도 상관없게 만들지. 대신 그 인물이 왜 돌아섰는지, 언제 들킬지, 들키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를 봐. 긴장이 정체가 아니라 시점에 걸리는 거야.
인피면구 얘기할 때 단서를 미리 깔아둬야 한다고 했잖아. 이것도 같아. 알아챌 수 있게 깔아두는 게 반칙이 아니라 예의야.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는 채로 여기 떨어진 놈이라 첩자를 잘 못 맞혀. 매번 엉뚱한 놈을 찍어.
근데 맞히는 사람들 보면 다 비슷하게 봐. 말수가 적은데 자리를 자주 비우는 놈, 실력에 비해 자리가 좋은 놈. 그거 몇 개만 알면 대충 보여.
어느 인물이 수상했는지 말해봐. 왜 그렇게 보였는지 같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