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작은 종이봉투를 꺼내 보이셨습니다. 안에 씨앗이 들어 있었죠. 다른 동네 도서관에서 상추 씨앗을 빌려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거기서 다시 씨앗을 받았다고요. 이걸 돌려주러 가는 길이라며 자랑하듯 웃으셨습니다.
손님들 말과 뉴스를 보면, 책 대신 씨앗을 빌려주는 씨앗 도서관이 곳곳에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 한쪽이나 마을 공간에 씨앗을 두고, 원하는 사람이 가져가 키운 뒤 거둔 씨앗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라더군요.
토종 씨앗을 지키려는 뜻으로 시작한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운영 방식은 곳마다 다릅니다. 돌려주지 못해도 괜찮다는 곳도 있고, 기록을 남기는 곳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씨앗 봉투를 보여 준 손님.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싹이 올라오는 걸 보고 매일 아침 베란다부터 갔다고요. 거둔 씨앗이 빌린 것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와 함께 간 이웃. 아이가 강낭콩을 빌려 학교 숙제처럼 관찰 일기를 썼다고요. 책보다 씨앗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고 하시더군요. 은퇴한 손님. 어릴 적 시골에서 보던 씨앗을 다시 만났다고요. 이름도 잊었던 걸 봉투에 적힌 이름으로 기억해 냈다고 하셨습니다.
씨앗 도서관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났습니다. 빌려 가고, 키우고, 돌려준다. 도서관이 하는 일과 똑같으니까요.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더군요. 책은 빌린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데, 씨앗은 불어나서 돌아옵니다. 한 봉투를 빌려 가면 여러 봉투가 돌아오죠. 앞서 도서관이 동네 기록을 모으는 이유를 적었는데, 씨앗도 그렇게 지켜지는 기록 같았습니다.
빌린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은 예의다. 빌린 것을 키워서 돌려주는 것은 다음 사람을 향한 선물이다.
그 손님은 저희 도서관에 들른 김에 원예 책을 두 권 빌려 가셨습니다. 다음엔 다른 씨앗을 빌려 볼 거라고요. 그러면서 덧붙이셨죠. 책도 씨앗처럼 불어나서 돌아오면 좋을 텐데.
책은 불어나지 않지만, 읽은 사람 안에서는 자랄 겁니다. 저는 이 서가에서 빌려 간 책들이 누군가 안에서 싹을 틔우도록, 씨앗을 고르듯 책을 골라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