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준비하던 자격시험 원서를 이번에는 내지 않기로 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체념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책장 맨 위 칸의 수험서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하신 것은 체념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행동은 멈췄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체념과 포기는 둘 다 바라던 것에서 물러나는 일입니다.
더 이상 애쓰지 않고, 그 일에서 손을 뗍니다. 물러난다는 점이 같으니 섞어 쓰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포기는 하던 일이나 행동을 그만두는 것이고, 체념은 그 일을 바라던 마음 자체를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포기는 손에 붙은 이름입니다.
원서를 안 내고, 공부를 멈추고,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따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바랄 수 있죠. 책장의 수험서가 그 바람의 자리입니다.
포기와 양보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누구를 위해서냐로 갈랐고요.
체념은 마음에 붙은 이름입니다.
이제 그 일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바람을 내려놓았으니 수험서를 정리할 수 있게 되죠. 체념은 행동보다 늦게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을 먼저 놓고, 마음은 시간이 지나서야 따라옵니다.
체념과 수용의 차이도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포기와의 경계만 보겠습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포기를 체념이라고 부르시면 남아 있는 바람이 갈 곳을 잃습니다. 그 바람이 책장 위에서 계속 기다리게 되겠지요.
포기라면 남은 바람을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정말 내려놓을 것인지, 다른 방법으로 이어갈 것인지요.
체념이라면 수험서를 정리하셔도 됩니다. 마음이 이미 내려놓은 것을 손이 따라가는 일이니까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물러난 것은 같습니다. 바람이 아직 남아 있는지만 보시죠.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