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을 인쇄해 오셔서 위에서부터 차례로, 우리 관에 있는 것만 다 빌려 가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성실하신 겁니다. 다만 그 목록은 그렇게 쓰라고 만든 게 아니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권장도서 목록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학교, 교육청, 도서관 협회, 출판 관련 단체, 신문사까지요.
만드는 방식도 제각각이죠. 전문가가 모여 고르기도 하고, 분야별로 나눠 채우기도 하고, 그해 나온 책 중에서 뽑기도 합니다. 어느 목록이든 만든 사람의 기준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학년 목록인데 두 곳에서 만든 게 겹치는 책이 절반도 안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잘하는 일이 분명히 있죠.
골라야 할 범위를 줄여줍니다. 서점에 수만 권이 있는데 그중 서른 권으로 좁혀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입니다.
빠지기 쉬운 분야를 채워줍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분야만 읽는데, 목록은 과학이나 역사처럼 스스로 안 고르는 쪽을 넣어두죠.
최소한의 검증을 거칩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읽고 넣은 겁니다.
문제는 목록을 해야 할 일 목록으로 쓰실 때 생깁니다.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목록에 있어서 읽으면 그건 숙제가 됩니다. 아이가 도서관을 숙제하는 곳으로 배우면 그 뒤로 스스로는 안 오죠. 목록 서른 권을 다 읽고 책을 싫어하게 되는 것보다, 세 권 읽고 다음 책을 스스로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학년이 붙어 있다고 그 나이에 맞는 것도 아닙니다. 같은 학년 안에서 읽는 폭이 아주 넓거든요.
저는 이 순서를 권합니다.
하나, 목록에서 아이가 고르게 하십시오. 서른 권을 다 보여주고 다섯 권만 고르라고 하시면 됩니다. 고르는 일은 아이 몫으로 남겨두는 겁니다.
둘, 두 목록을 비교해보십시오. 두 곳 목록에 다 들어 있는 책이면 그건 좀 더 믿을 만합니다.
셋, 안 맞으면 그냥 덮게 두십시오. 목록에 있다고 끝까지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지도는 갈 수 있는 곳을 보여줄 뿐, 어디로 갈지까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이건 아이 얘기만은 아닙니다. 필독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같은 목록도 똑같이 쓰시면 됩니다.
거기 있는 책을 다 읽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목록에서 지금 나에게 걸리는 한 권을 고르는 게 그 목록의 쓸모죠.
전부 빌려 가셨던 그분은 다음에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아이가 두 권만 읽고 나머지는 안 봤다고요.
저는 두 권이면 잘된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