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빌리시기 전에 마지막 몇 쪽을 먼저 펴보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좀 민망해하시더군요.
읽는 재미를 스스로 없앤 것 같아 그러셨던 겁니다. 저는 그게 재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말을 먼저 보는 손을 보면 대개 재미를 앞당기려는 게 아닙니다. 모르는 상태를 못 견디는 것에 가깝죠.
그 상태에서 우리는 계속 예상합니다. 이 인물이 어떻게 될지, 이 관계가 어디로 갈지요. 그 예상이 마음을 쓰게 만듭니다. 뒤를 알고 나면 그 소모가 멈추죠.
그러니 이건 성급함이 아니라 불확실을 줄이려는 움직임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갈립니다.
나쁜 결말을 피하려는 쪽. 마음 아픈 이야기를 모른 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겁니다. 알고 읽으면 준비가 되니까요.
시간을 아끼려는 쪽. 끝이 별로면 안 읽겠다는 계산이죠.
끝을 알고 봐야 잘 보이는 쪽. 이건 좀 다릅니다. 뒤를 알면 앞의 복선이 보인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죠.
앞의 둘은 방어이고 마지막은 방식입니다. 같은 행동인데 안에서 하는 일이 다릅니다.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모르는 채로 지나가야 작동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뒤집히는 순간이 핵심인 이야기가 그렇죠. 그걸 미리 알고 읽으면 그 장면이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 습관이 되면 못 견디는 힘이 안 자랍니다. 모르는 상태를 잠깐 견디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이건 책 밖에서도 쓰이는 힘입니다.
앞서 다시 읽기 얘기를 하면서 적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우리는 결말을 알고 읽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오히려 더 잘 읽히죠.
결말을 아는 것이 이야기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처음 읽을 때의 그 재미 하나가 없어질 뿐이고, 대신 다른 게 보입니다. 그러니 미리 보셨다고 그 책을 망친 건 아닙니다.
끝을 아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이 있고, 끝을 아는 사람만 보는 것도 있다.
없애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만 정해두시면 좋겠습니다.
뒤를 넘기기 전에 잠깐 물어보십시오. 지금 궁금한 건지, 아니면 불안한 건지요. 궁금해서면 보셔도 됩니다. 불안해서면 그 불안이 이 책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한 번 보시면 좋고요.
마지막 몇 쪽을 먼저 보셨던 그분은 그 책을 다 읽으셨습니다. 결말을 알고도 끝까지 가셨죠.
저는 그게 답이라고 봅니다. 미리 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미리 보고 안 읽는 게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