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을 하루 만에 다 읽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좋았는데 어느 편이 어느 편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잘못 읽으신 게 아닙니다. 장편을 읽는 속도로 단편집을 읽으면 대개 그렇게 됩니다.
단편집은 겉으로는 한 권인데 안은 여러 권입니다.
한 편이 끝나면 인물도 배경도 다 바뀌죠. 그런데 쉬지 않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면, 앞 편의 여운이 남은 채로 새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두 편이 서로를 지웁니다.
앞서 시집 읽는 얘기를 적었는데 구조가 비슷합니다. 다만 단편은 길이가 있어서 더 섞이죠.
제가 권하는 건 이겁니다. 한 편이 끝나면 책을 닫으십시오.
바로 다음 편으로 안 가셔도 됩니다. 십 분이든 하루든 사이를 두시면 앞 편이 자리를 잡습니다. 단편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머리에 남는 게 그 형식의 핵심이거든요.
몰아 읽으면 그 남는 시간이 통째로 없어집니다.
또 하나 자주 놓치시는 대목입니다. 단편집은 앞에서부터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닙니다.
목차에서 제목이 끌리는 것부터 보셔도 됩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작가가 순서를 일부러 짠 묶음이 있죠. 그런 건 서문이나 작가의 말에 적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앞을 한 번 보시면 됩니다.
어디부터 읽을지 모르겠으시면 책 제목과 같은 편을 먼저 보십시오.
대개 그 묶음을 대표하는 편이고, 그 작가의 결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읽어보고 안 맞으면 그 책 전체가 안 맞을 확률이 높으니, 고르는 데 드는 시간도 줄죠. 앞서 제목만 보고 고를 때 함정을 적었는데, 단편집은 제목이 안을 꽤 정직하게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단편집을 다 기억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열 편 중에 한 편이 오래 남으면 그 책은 값을 한 겁니다. 나머지는 그 한 편을 만나기 위한 길이었다고 보셔도 되고요. 앞서 두꺼운 책을 절반만 읽어도 손해가 아니라고 적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더 분명합니다.
짧은 이야기는 빨리 읽으라고 짧은 것이 아니다. 짧아서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저는 그 책을 다시 빌려 가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하루에 한 편씩요.
한 주쯤 뒤에 오셔서 세 편 제목을 말씀하시더군요. 같은 책이었고 간격만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