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세 번 빌려 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반납될 때마다 갈피가 앞쪽 같은 자리에 꽂혀 있더군요.
세 번째에 여쭤봤습니다. 그분이 그러셨죠. 여기서 자꾸 막히는데 건너뛰면 안 될 것 같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요. 저는 그 말에 좀 안타까웠습니다. 그 규칙을 누가 정했을까요.
우리는 소설을 먼저 배웠습니다. 소설은 순서를 어기면 이야기가 깨지죠. 그래서 책은 앞에서 뒤로 읽는 것이라고 몸에 익습니다.
그런데 세상 책의 대부분은 소설이 아닙니다. 설명하는 책은 순서가 아니라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장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앞을 안 읽어도 뒤가 성립하도록 씁니다. 저자도 그렇게 쓰고 있죠.
이 구분만 하시면 됩니다.
앞쪽이면 목차를 보고 필요한 데부터 펴셔도 됩니다. 뒤쪽이면 건너뛰면 손해가 크죠. 책 종류에 따라 읽는 법이 다릅니다.
저는 설명하는 책을 이 순서로 봅니다.
첫째, 목차를 읽습니다. 이 사람이 주제를 어떻게 잘랐는지만 봅니다. 둘째, 마지막 장을 먼저 읽습니다. 어디에 도착하려는지 알면 중간이 훨씬 잘 들어오거든요. 셋째, 지금 궁금한 장을 폅니다. 그 장에서 모르는 말이 나오면 그때 앞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게 낭비 같지만 반대더군요. 필요해서 찾아본 개념은 안 잊힙니다. 순서대로 읽으며 만난 개념은 왜 배우는지 모른 채 지나가죠.
여기가 진짜 걸림돌입니다. 절반만 읽고 덮으면 그 책을 안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저는 이렇게 봅니다. 책은 다 읽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를 가져오는 게 목적입니다. 오백 쪽을 다 읽고 아무것도 안 남은 경우와, 삼십 쪽을 읽고 생각이 하나 바뀐 경우 중에 어느 쪽이 읽은 걸까요.
완주는 미덕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완주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골라 읽기가 늘 옳은 건 아닙니다.
정말 좋은 책은 안 궁금하던 부분에서 예상 못 한 것이 나옵니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가져가면 그 책이 주려던 것은 못 받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한 번 골라 읽고 좋았던 책은 다시 처음부터 봅니다.
골라 읽기는 그 책과 친해지는 첫 방법이지 최종 방법은 아닙니다.
세 번 빌려 가셨던 그분께 저는 그 장을 건너뛰어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번째에는 갈피가 뒤쪽에 꽂혀 있더군요.
막힌 자리에서 멈춰 서 있으면 그 책 전체를 못 읽습니다. 지나가 보면 대개 그 자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중요했다면 뒤에서 다시 나옵니다. 그때 돌아가면 됩니다.
어디부터 읽을지는 저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정하는 겁니다. 그 결정을 되찾는 것만으로 못 읽던 책이 읽히기 시작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