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집을 펴보시고는 이건 대본 아니냐며 도로 꽂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대본이죠. 다만 읽으라고 나온 대본입니다. 소설과 읽는 방식이 달라서 적어두겠습니다.
희곡을 펴면 제일 먼저 걸리는 게 이겁니다. 인물이 어떤 마음인지 아무도 안 알려줍니다.
소설은 그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 문장으로 적어줍니다. 희곡은 대사와 짧은 지시문뿐이죠. 그래서 읽는 쪽이 행간을 직접 채워야 합니다.
이게 빈틈이 아니라 이 형식의 설계입니다. 무대에서는 배우가 채우는 자리고, 읽을 때는 읽는 사람이 채우는 자리죠.
그래서 제가 권하는 건 하나입니다. 앞의 지시문을 그냥 넘기지 마십시오.
무대가 어디인지, 누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이 놓여 있는지가 거기 적혀 있습니다. 그걸 머릿속에 한 번 세우고 대사로 들어가시면 갑자기 읽힙니다. 안 세우고 들어가면 목소리만 허공에서 오가죠.
앞서 그림이 많은 책 보는 순서에서 설명 글을 먼저 읽으라고 적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합니다.
앞쪽에 등장인물 목록이 있습니다. 이것도 잘 안 보고 넘어가시더군요.
이름과 관계만 훑고 들어가시면 중간에 헷갈릴 일이 확 줍니다. 희곡은 이름이 계속 반복되는데 누가 누구인지 모르면 그 반복이 전부 소음이 되거든요.
앞서 낭독 얘기에서 시가 소리로 된 글이라고 적었는데, 희곡은 그보다 더합니다. 애초에 말하라고 쓴 글이니까요.
한 인물만 골라서 그 대사만 소리 내어 읽어보셔도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말투가 잡히고, 말투가 잡히면 성격이 따라옵니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안 잡히던 게 붙죠.
한 가지 실용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희곡은 대체로 얇습니다.
앞서 얇은 책 얘기를 적었는데, 한두 시간이면 한 편이 끝납니다. 한 편을 끝까지 읽는 경험을 하기에 좋은 형식이죠. 그리고 다 읽고 나서 그 작품을 무대나 영상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걸 보게 됩니다.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까지가 읽기라면, 희곡은 가장 많이 읽게 만드는 형식이다.
저는 앞의 지시문 한 쪽만 같이 읽어드렸습니다. 무대를 세워드린 거죠.
그러시더니 그 자리에서 삼십 분을 읽으시더군요. 같은 책이었고 들어가는 문만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