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하나가 기록장을 펼쳐 보이며 자랑했습니다. "하프 코스 완주"라고 적힌 칸이었죠. 읽은 쪽수를 다 더하니 하프 마라톤 거리가 됐다고요. 다음엔 풀코스를 달리겠다며 의기양양하더군요.
손님들 말과 뉴스를 보면, 읽은 쪽수를 거리로 바꿔 세는 독서 마라톤 행사를 여는 도서관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가을 독서의 달 무렵 시작하는 곳이 많다더군요.
방식은 대개 이렇습니다. 한 쪽을 몇 미터로 쳐서 읽은 만큼 거리를 쌓고,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면 기념품이나 완주증을 주는 식이죠. 짧은 코스부터 풀코스까지 고를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기준과 기간은 곳마다 다릅니다.
하프 코스를 완주한 아이. 처음엔 그림책만 읽었는데, 거리를 늘리려고 두꺼운 책에 도전하게 됐다고요. 아이와 함께 참여한 부모님. 가족이 한 팀으로 거리를 합치는 방식이라, 저녁마다 누가 몇 쪽 읽었는지 서로 묻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참여한 직장인 손님. 숫자가 쌓이는 게 보이니 출퇴근길에 책을 꺼내게 되더라고요. 올해 처음으로 열 권을 넘겼다고 하시더군요.
숫자로 세는 독서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쪽수만 채우려고 얇은 책만 고르거나, 빨리 넘기기만 하면 어쩌나 싶었죠. 앞서 니체 느리게 읽기를 적었는데, 독서는 원래 거리 경주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숫자는 시작하게 만드는 장치였고, 그다음은 책이 알아서 끌고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아이가 두꺼운 책에 도전한 것처럼요.
기록은 첫걸음을 떼게 하는 신호총일 뿐이다. 달리는 동안 무엇을 보았는지는 오직 달린 자만이 안다.
그 아이는 풀코스를 위해 책 다섯 권을 한꺼번에 빌려 갔습니다. 그중 한 권은 제가 권한 두꺼운 모험 소설이었죠. 다 읽으면 몇 킬로미터냐고 묻길래 같이 계산해 줬더니 눈이 동그래지더군요.
거리를 세는 일보다 중요한 건 달리는 동안 만나는 풍경일 겁니다. 저는 누군가의 기록장이 채워지는 동안 그 길 위에 좋은 책 한 권을 놓아두는 일을 제 몫으로 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