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집을 뽑아 몇 장 보시더니 이런 걸 봐도 되느냐고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좋은 물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넘길 자리가 아니거든요.
먼저 이걸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맞습니다. 일기와 편지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쓴 글이죠.
그래서 읽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고쳐 쓰지 않은 문장, 앞뒤가 안 맞는 대목, 나중에 본인이 뒤집은 말이 그대로 있죠. 소설이나 산문처럼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듬어지지 않음이 이 자료의 값이기도 하고요.
그럼 왜 서가에 있느냐. 대체로 이런 경로입니다.
본인이 냈거나. 나중에 스스로 정리해서 낸 경우요. 이건 이미 독자를 생각하고 고른 겁니다. 유족이 냈거나. 가장 흔합니다. 앞서 향토자료 얘기를 적었는데 그렇게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죠. 저작권이 끝나서. 오래된 인물의 자료는 공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 내기로 정한 것이죠. 그 결정이 있었으니 여기 있는 겁니다.
읽으셔도 됩니다. 다만 두 가지는 알고 보시는 게 좋겠더군요.
전부가 아닙니다. 낼 때 골라냅니다. 유족이 뺀 대목, 출판사가 뺀 대목이 있죠. 그러니 남아 있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보시면 어긋납니다.
그 사람이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앞서 전기 읽는 순서를 적었는데, 전기는 해석이라도 저자가 책임을 집니다. 일기는 쓴 사람이 반박할 자리가 없죠.
한쪽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만 나오는 게 분명히 있죠.
결론에 이르기 전의 사람이 드러납니다. 완성된 글에서는 이미 정리된 생각만 나오는데, 일기에는 헤매던 몇 달이 그대로 있죠. 그 헤맴이 읽는 사람에게 쓸모가 큽니다.
앞서 얇은 책에서 과정이 빠진다고 적었는데, 일기는 과정만 남은 자료입니다.
다듬어진 글은 그 사람이 도착한 곳을 보여주고, 다듬지 않은 글은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앞에서부터 다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날짜가 있으니 궁금한 시기부터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낸 책과 같이 보시면 훨씬 재밌습니다. 어느 해 일기와 그 무렵 쓴 글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드러나죠.
물으셨던 그분께 저는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읽어도 되는 자리까지 온 글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