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은 책이 스무 권인데 또 빌려 가도 되느냐고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죄짓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 더미를 다르게 봅니다.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죠.
책은 몇 분이면 삽니다. 읽는 데는 며칠이 걸리고요. 이 차이가 매달 조금씩 쌓입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산수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살 때의 나와 읽을 때의 나가 다릅니다. 앞서 책을 사면 읽을 시간까지 산 것 같을 때를 적었는데, 사는 순간에는 그 책을 읽을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죠. 실제로 그 시간이 오느냐는 다른 문제고요.
저는 쌓인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의 기록으로 봅니다.
한 권 한 권이 그때의 관심입니다. 요리책이 세 권 있으면 그 무렵 그게 궁금하셨던 거죠. 그러니 더미를 훑어보시면 내가 뭘 궁금해하는 사람인지가 보입니다. 이건 다른 데서 못 얻는 정보고요.
그래도 무거우시면 방법이 있습니다.
한 권 사면 한 권 읽고 사십시오. 제일 단순하고 제일 잘 듣습니다. 빌려서 읽어보고 사십시오. 사는 순간의 설렘이 읽는 힘까지는 아니니까요. 우리 관에 있는지 먼저 보시면 됩니다. 더미에서 한 권 빼서 눈에 보이는 데 두십시오. 쌓아두면 안 보입니다. 한 권만 따로 꺼내두시면 손이 갑니다.
여기를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 년 넘게 손이 안 간 책은 앞으로도 안 읽으실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책을 안 버리는 마음을 적었는데, 보내는 것도 정리의 한 종류죠.
필요하면 다시 만납니다. 도서관에 있고, 헌책으로도 나옵니다. 그러니 영영 이별이 아닙니다. 이걸 아시면 보내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처음 물으신 분께 드린 답입니다.
빌린 책은 쌓이지 않습니다. 반납일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사놓은 책보다 먼저 읽히죠. 그리고 안 읽고 반납하셔도 남는 게 없으니 죄책감도 안 쌓입니다.
그러니 더미가 무거우실수록 빌려 보시는 쪽이 낫습니다.
쌓인 책은 미룬 일이 아니라, 그때마다 무언가를 알고 싶어 했다는 자국이다.
세 권 더 빌려 가셨습니다.
다음에 오셔서는 빌린 세 권은 다 읽으셨다고 하시더군요. 산 스무 권은 그대로고요.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