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청구기호처럼 번호를 붙여보려다 사흘 만에 그만두셨다는 얘기를 손님께 들었습니다.
그러실 만합니다. 도서관 분류는 수십만 권을 모르는 사람이 찾게 하려고 만든 것이거든요. 집에는 안 맞습니다.
도서관과 집은 조건이 셋이나 다릅니다.
권수가 적습니다. 몇백 권이면 눈으로 훑어도 찾아집니다. 찾는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뒀는지만 알면 되죠. 계속 늘고 줄어듭니다. 번호를 붙이면 새 책이 올 때마다 밀어내야 합니다. 그게 사흘 만에 그만두게 되는 이유고요.
집에서 오래 가는 정리는 대체로 이 셋 중 하나더군요.
주제별로 덩어리만. 요리책은 이 칸, 소설은 저 칸 정도로만 나눕니다. 그 안에서는 안 맞춰도 됩니다.
자주 보는 것 가까이. 손이 자주 가는 책을 눈높이에, 안 보는 책을 위나 아래로요. 앞서 손 닿는 데 두는 얘기를 적었는데 이게 실제로 제일 크게 작동합니다.
읽은 것과 안 읽은 것으로. 안 읽은 책만 한 칸에 모아두면 다음에 뭘 읽을지 고르는 자리가 생깁니다.
보기 좋게 두고 싶으시면 판형으로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앞서 문고본과 양장본 얘기를 적었는데, 높이가 다른 책이 섞이면 칸이 낭비되거든요.
다만 이건 찾기와 맞바꾸는 것입니다. 크기로 꽂으면 같은 주제가 흩어지죠. 어느 쪽이 나은지는 그 책장을 뭘로 쓰시는지에 달렸습니다.
여기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정리 자체가 목적이 되면 책 읽는 시간이 거기로 갑니다.
앞서 보기 좋은 수납을 먼저 사지 마시라고 적었는데 같은 자리입니다. 다시 찾을 수만 있으면 그 책장은 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정리가 필요해지는 건 대개 책이 너무 많아졌을 때인데, 그때는 정리가 아니라 줄이는 일이 먼저더군요.
정리는 찾기 위한 수단이다. 찾는 데 문제가 없으면 정리할 이유도 없다.
저는 번호를 붙이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신 안 읽은 책만 한 칸에 모아보시라고요.
그 칸이 줄어드는 게 보이니까 읽는 속도가 붙더라고 하시더군요. 정리가 읽기를 도운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