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다시 빌려 가시면서 이번엔 처음부터 읽겠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죠. 그렇게 하시면 대개 같은 자리에서 또 멈추거든요.
읽다 만 책을 다시 잡을 때 대부분 앞으로 돌아갑니다. 앞이 기억 안 나니까 당연한 듯 느껴지죠.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앞부분은 이미 읽어서 재미가 덜하고, 거기서 힘을 다 쓰고 나면 원래 막혔던 자리에 도착할 즈음 다시 지칩니다. 그래서 같은 데서 또 멈춥니다.
앞서 두꺼운 책 얘기를 하면서도 적었는데, 막힌 자리는 지나가야지 돌아가면 안 풀립니다.
하나, 갈피 꽂힌 자리를 폅니다. 앞으로 안 갑니다.
둘, 목차를 봅니다. 지금까지 읽은 장의 제목만 훑으시면 됩니다. 이삼 분이면 앞의 내용이 대체로 돌아옵니다. 다시 읽는 것보다 이게 훨씬 빠르죠.
셋, 그 장의 첫 쪽만 다시 읽습니다. 멈춘 장의 처음으로만 돌아가시면 됩니다. 한두 쪽이면 흐름이 잡힙니다.
넷, 이어서 갑니다.
앞의 순서로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봅니다.
얼마나 오래 놓아두셨나. 몇 달이 지났으면 세부는 어차피 안 돌아옵니다. 그럴 때는 요약이 있는 책이면 그걸 보시고, 없으면 읽은 데까지의 메모를 보시면 됩니다. 앞서 메모 얘기에서 적은 한 줄 요약이 여기서 값을 하죠.
왜 멈췄는지 기억나시나. 재미없어서 멈춘 것과 바빠서 멈춘 것은 다릅니다. 뒤쪽이면 이어서 가면 되고, 앞쪽이면 그 책을 굳이 붙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가 제일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모든 책을 다시 잡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읽다 만 책이 마음에 걸리는 건 미완이라서지 그 책이 필요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죠. 읽은 데까지가 그 책에서 나에게 온 전부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납하시고 잊으시면 됩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정리입니다.
되돌아가는 일은 성실함처럼 보이지만, 자주 앞으로 못 가는 방식이 된다.
저는 갈피 자리에서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차만 훑고요.
그 책을 다 읽고 오셨습니다. 세 번째 만에요. 앞의 두 번은 앞부분만 두 번 읽으신 셈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