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머쓱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와 말다툼을 하다가 "니체도 정답은 없다고 했어"라고 보냈는데, 답장이 안 온다고요. 그 말이 정말 니체 말이 맞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반쯤은 맞습니다. 그리고 반쯤은 니체가 들으면 고개를 저을 쓰임이죠.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실이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니체가 책으로 낸 글이 아니라 유고, 그러니까 남긴 메모 속에 있습니다. 출간된 책에서 같은 생각을 다듬어 쓴 대목은 『도덕의 계보』 셋째 논문에 나오죠.
거기서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관점에 따라 보는 것, 관점에 따른 앎만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중요한 말을 덧붙이죠.
한 가지 일에 대해 더 많은 감정을, 더 많은 눈을 끌어들일수록 그 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더 온전해진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관점주의는 "아무 관점이나 다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의 관점에 갇히지 말고 여러 눈으로 보라는 말에 가깝죠.
"정답은 없으니 내 말도 맞다." 니체가 말한 건 오히려 반대쪽입니다. 제 관점 하나만 고집하는 게 가장 좁은 해석이죠. "그러니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이건 허무로 닫는 읽기입니다. 니체는 해석을 창조하는 일로 봤습니다. 믿을 게 없는 게 아니라, 무엇을 믿을지 제가 빚어야 한다는 거죠. "사실 확인은 필요 없다." 니체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앞서 정보가 맞는지 가리는 기준을 적었는데, 사서의 일은 여전히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눈으로 본 세상은 납작하다. 다른 이의 눈을 빌릴 때마다 세상은 한 겹씩 두꺼워진다.
다툼이 생기면 상대 쪽에서 한 번 보십시오. 상대의 말이 맞다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보이는지를 보는 겁니다. 같은 주제의 책을 두 권 읽으십시오. 앞서 같은 주제 두 권 읽는 순서를 적었는데, 그게 관점을 늘리는 가장 쉬운 연습이죠. 제 해석에 이름을 붙이십시오. "이건 내 관점에서 본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다른 관점이 들어올 자리가 생깁니다.
그 손님께 『도덕의 계보』의 그 대목을 보여드렸습니다. 한참 읽으시더니 웃으셨죠. 이거면 내가 친구 눈으로도 봤어야 했다는 얘기네요, 하시면서요.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시더군요.
해석만 있다는 말은 저를 자유롭게도, 게으르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더 많은 눈을 빌려 보라는 숙제로 받아, 제 해석을 조금씩 넓혀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