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오르지 않은 월급 명세서를 받으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먹만 쥐었다 폈다 했다고 하시더군요.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고요. 그 분은 분노가 치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감정은 분노보다 울분에 가깝습니다.
울분과 분노는 둘 다 부당하다고 느낄 때 치미는 뜨거운 감정입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거칠어지고,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화라는 점이 같으니 섞어 부르시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이 둘을 가를까요?
분노는 선을 넘은 상대를 향해 치솟는 화이고, 울분은 억울한 일이 쌓였는데 풀 길이 없어 안에서 답답하게 끓는 화입니다.
분노에는 대개 분명한 상대가 있습니다.
누가 선을 넘었는지 압니다. 그래서 분노는 그 상대를 향해 움직이려 합니다. 말을 하고, 따지고, 맞섭니다. 터뜨릴 길이 있는 화죠. 분노와 짜증, 분노와 증오, 흥분과 분노의 차이는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울분에는 향할 곳이 흐릿합니다.
월급이 오르지 않는 것은 누구 한 사람 탓으로 돌리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사정, 업계의 흐름, 오래된 구조가 얽혀 있죠. 따질 상대도, 따질 자리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화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 쌓입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손이 그 쌓임입니다.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울분을 분노라고 부르시면 터뜨릴 상대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가 흐릿하니 엉뚱한 곳으로 튀기 쉽겠지요.
분노라면 그 상대에게 무엇이 넘었는지를 말할 방법을 찾으시면 됩니다.
울분이라면 상대를 찾기보다 쌓인 것을 꺼낼 자리를 찾으시는 편이 맞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말로 꺼내는 것, 내 몫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정하는 것이요.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도 끓는 온도는 조금 내려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뜨거운 것은 같습니다. 향할 곳이 있는지만 보시죠.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