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정리된 지 반년이 됐는데도 그 사람 이름만 나오면 굳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일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안 꺼졌죠. 그러면 붙어 있는 자리가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분노와 증오는 둘 다 특정한 사람을 향해 일어납니다.
둘 다 세고, 둘 다 그 사람을 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로 부르시는데, 붙어 있는 대상이 다릅니다.
분노는 일에 나고 증오는 사람에 붙습니다.
분노는 그 사람이 한 일 때문에 나는 감정입니다.
선을 넘었고, 약속을 깼고,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상이 행동입니다. 그래서 분노는 그 일이 정리되면 잦아듭니다.
사과를 받거나, 바로잡히거나, 시간이 지나 그 일이 작아지면 꺼집니다. 그게 정상적인 경로겠지요.
증오는 그 사람 자체를 향하는 상태입니다.
그 일이 정리돼도 안 꺼집니다. 대상이 행동이 아니라 존재니까요. 그래서 증오는 오래 가더군요. 그리고 붙들고 있는 쪽이 더 힘듭니다.
증오가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만한 일을 겪으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름을 알아야 크기를 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그 일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반년이 지나고 일이 정리됐는데 이름만 들어도 굳으시면 뒤쪽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요점입니다.
분노가 반복되고 아무것도 안 바뀌면 대상이 옮겨갑니다. 그 사람이 한 일에서 그 사람이라는 사람으로요. 그 순간 다룰 방법이 사라집니다. 행동은 고칠 수 있는데 사람은 못 고치니까요.
그래서 증오는 출구가 없습니다. 출구가 없으면 그 감정을 계속 데리고 다니게 됩니다.
분노 쪽이면 할 일은 그 일을 다루는 것입니다. 말하거나, 요구하거나, 정리하거나요.
증오 쪽이면 할 일은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을 문장으로 적어 대상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나쁜 인간이다를 그 사람은 그때 그 일을 했다로요.
적어놓고 보면 크기가 재집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거리를 두는 일이지 마음을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그 사람 때문인 것은 같습니다. 해결되면 풀리는지만 보시죠.
구분이 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