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뉴스를 보다가 밥숟가락을 놓고 십 분을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정작 자기 일로 속상했던 것에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같은 저녁에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만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두 단어를 갈라 적어 두었습니다.
분노는 내 선이 넘어졌을 때 옵니다. 내가 당했고, 내가 손해를 봤고, 내 자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대상이 분명하고 상대도 분명합니다.
공분은 남의 선이 넘어진 것을 보고 옵니다. 내가 당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화가 납니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람이 규칙을 공유하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남의 자리에서 규칙이 깨져도 내 규칙이 흔들린 것으로 느껴지지요.
둘 다 정당합니다. 다만 쓸 수 있는 힘의 크기가 다릅니다.
이상하게도 공분 쪽이 목소리가 더 큽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공분에는 위험이 없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말해도 잃을 게 없습니다. 반면 내 일에서 화를 내면 관계가 상하거나 손해가 납니다. 그래서 내 선이 넘어진 자리에서는 조용하고, 남의 선이 넘어진 화면 앞에서는 십 분을 말하게 됩니다.
가족이 그날 그랬던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저는 그 순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만 보았습니다.
뭔가에 화가 나 있을 때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 일로 내가 잃은 게 있습니까?
두 번째라고 가짜인 게 아닙니다. 다만 이름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분은 해결로 이어지는 통로가 없어서 안에 계속 남거든요.
분노에는 대개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하거나, 따지거나, 관계를 정리하거나요. 크든 작든 출구가 있습니다.
공분에는 출구가 잘 없습니다. 화면 속 일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대로 몸에 남습니다. 하루에 여러 번 이걸 반복하면 저녁에 지치게 되지요. 무슨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지친다면 대개 이 항목입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공분에 하루치 힘을 다 쓰고, 정작 내 선이 넘어진 일에는 힘이 안 남는 겁니다. 순서가 뒤집힌 채로 굳으면 내 자리는 계속 방치됩니다.
분노 쪽이면 할 일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상대에게 넘어진 선을 말하는 것이지요. 늦어질수록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공분 쪽이면 할 일은 총량을 정하는 것입니다.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남의 선이 넘어진 것에 화가 나는 사람이 나쁠 리가 없지요. 다만 하루에 얼마까지 쓸지를 정해 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 선에 쓸 몫이 남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유난히 지치셨다면 세어보시죠. 내 선이 넘어진 일이 몇 건이었습니까. 영인데 지쳤다면 나머지는 전부 남의 선이었을 겁니다.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