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을 들고 오셔서 어느 쪽이 낫겠냐고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 권을 짚어드렸고, 그분은 그 책을 그대로 들고 나가셨죠.
그날은 별생각 없었는데, 그분이 그 뒤로도 매번 같은 걸 물으시더군요. 그때부터는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의견을 구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아는 사람에게 묻는 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죠.
다만 갈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묻고 나서 판단을 내가 하느냐, 상대의 답을 그대로 실행하느냐입니다.
밖에서 보면 둘 다 물어보는 것처럼 보이는데,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죠.
이유를 생각해보면 대개 결과보다 책임 쪽입니다.
내가 정하면 잘못됐을 때 내 탓이 됩니다. 남이 정한 걸 따르면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죠. 그래서 어려운 결정일수록 물어볼 사람을 찾게 됩니다.
또 하나는 틀린 선택을 견디는 힘입니다. 한 번 크게 후회한 경험이 있으면 그다음부터 손이 안 나갑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상처에 가깝죠.
넘겨서 얻는 게 있으면 그냥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남는 게 잘 없더군요.
남이 정해준 대로 해서 잘되면 그건 그 사람이 잘 본 거고, 잘못되면 내가 왜 그 말을 들었나 싶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 판단은 안 늘어납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도 또 물어야 하죠.
물어보는 게 습관이 되면 물어볼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그게 제일 곤란한 대목입니다.
남의 답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자기 자리도 함께 잃는다.
저는 물어보는 것 자체를 말리지 않습니다. 다만 묻는 방식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냐고 묻는 대신, 각각 뭐가 다르냐고 물으십시오. 앞쪽은 답을 받는 물음이고 뒤쪽은 재료를 받는 물음입니다. 재료를 받으면 고르는 건 내가 하게 되죠.
그리고 물으시기 전에 속으로 한쪽을 먼저 정해두십시오. 그러고 나서 상대 얘기를 들으면, 그 얘기가 내 생각을 바꾸는지 아닌지가 보입니다. 안 바뀌면 원래 답이 맞았던 거고요.
큰 결정부터 혼자 하시라는 말씀은 안 드립니다. 그건 무리죠.
책 두 권 중에 고르는 것,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 같은 데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틀려도 손해가 없는 자리에서 결정하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죠.
그분께 저는 그다음부터 짚어드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 책이 어떻게 다른지만 말씀드렸죠. 처음에는 한참 서 계시더니, 몇 번 지나고는 금방 고르시더군요.
물어보시는 건 좋습니다. 다만 마지막 한 걸음은 본인이 떼셔야 그게 내 것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