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언니가 베란다 난간에 녹이 올라온 걸 보고 페인트가 벗겨져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페인트가 색을 내려고 바르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보다 녹슬지 말라고 덮는 쪽이 더 크다던데요.
박예슬 그럼 색은 덤인 건가요?
신미혜 옷으로 치면 멋이 아니라 비옷인 거예요.
들은 대로 옮기면 이래요. 이 집들은 만든 걸 그냥 파는 게 아니라 어디에 바를 것이냐에 맞춰 따로 만든대요.
배에 바르는 게 있고, 차에 바르는 게 있고, 건물에 바르는 게 있고, 공장에서 나오는 강판에 미리 발라 두는 것도 있다던데요.
박예슬 다 같은 페인트 아닌가요? 뭐가 그렇게 다른 건데요?
배에 바르는 건 바닷물에 몇 해를 잠겨 있어야 하고 배 밑에 붙는 것들도 막아야 한대요. 차에 바르는 건 공장에서 구워서 굳히는 거라 그 공장 설비에 맞아야 하고요. 아예 다른 물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가 이 업의 결이었어요.
이 집은 자기 물건을 쓰는 사람한테 직접 파는 게 아니잖아요. 남이 만드는 물건에 발리는 것이라, 그 남의 업이 바쁘면 같이 바쁘고 조용하면 같이 조용하다던데요.
앞에서 배 짓는 데와 엔진 만드는 데를 알아봤잖아요. 조선소가 바쁘면 배에 바르는 쪽이 바쁘고, 집을 많이 지으면 건물에 바르는 쪽이 바쁘대요. 앞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가 어느 차에 들어갈지 미리 정해진다는 걸 알아봤는데, 이쪽도 그 결이라고 했어요.
신미혜 한 집이 여러 업의 그림자를 같이 지고 있는 셈이죠.
이건 앞에서 알아본 것과 이어졌어요.
페인트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기름에서 갈라 낸 걸로 만든 게 많대요. 앞에서 석유화학 회사가 쪼갰다가 다시 잇는다는 걸 알아봤잖아요. 거기서 나온 게 이런 데로도 온다던데요.
그래서 원료값이 오르내리면 살림이 흔들리고, 넘기는 값에 얹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어요. KCC나 삼화페인트, 노루페인트 같은 이름을 들었어요.
다만 어느 집이 어느 쪽에 더 기대고 있는지는 저희가 밖에서 알기 어렵대요. 그건 이웃 언니도 모른다고 했어요.
색을 내려고가 아니라 지키려고 바른다는 것, 배·차·건물에 바르는 게 아예 다른 물건이라는 것, 남이 만드는 물건에 발리니 남의 업을 따라간다는 것, 그리고 원료가 기름 쪽에서 온다는 것.
어느 집이 나은지는 저도 몰라요. 다만 이제 이 얘기가 나오면 하나는 물어봐요. 그 집은 어디에 바르는 쪽이래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라던데요. 저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