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장터 한구석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앉아 있어. 지팡이를 짚고, 콩나물을 다듬고 있어.
무뢰배들이 할머니를 밀치고 지나가. 근데 할머니가 지팡이를 한 번 툭 내밀어. 무뢰배들이 줄줄이 넘어져.
노파 고수야. 무협에서 꽤 오래 쓰여온 반전이지.
노파 고수가 무서운 이유는 제일 약해 보여서야.
젊은 고수는 다들 경계해. 근데 허리 굽은 할머니는 아무도 경계 안 해. 탁발승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겉모습이 제일 낮아서 누구도 경계 안 한다고. 노파 고수는 그보다 더 낮아 보이는 자리야.
그리고 무협에서 노파는 대개 오래 살았어. 흰 수염 노고수 얘기할 때 수염은 시간이라고 했는데, 노파의 굽은 허리도 그 시간이야.
노파 고수는 대개 성격이 괴팍해. 말이 거칠고, 젊은 사람을 꾸짖고, 마음에 안 들면 지팡이를 휘둘러.
근데 그 괴팍함 속에 정이 있어. 주인공을 혼내면서 가르치고, 밥은 꼭 챙겨줘. 무협에 의원은 왜 다 괴짜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괴짜는 대개 겉만 괴짜야.
무협에 여고수는 왜 다 극단에 있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가운데 자리를 안 줘서라고. 노파 고수는 그 여고수의 마지막 자리야.
젊을 때 강호를 휘저었던 여고수가 나이 들어 장터에 앉아 있는 거지. 그 사람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날 때 이야기가 깊어져. 전대 고수 얘기할 때 씻은 손을 다시 적시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노파 고수가 지팡이를 드는 순간도 대개 누군가를 지키려고야.
객잔에 단골 할머니가 있어. 키도 작고 목소리도 작아. 근데 객잔에서 제일 목소리 큰 손님도 그 할머니가 한마디 하면 바로 조용해져.
"밥 먹을 땐 조용히 먹어." 이 한마디면 끝이야. 다들 할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해. 나도 그래. 할머니가 오는 날은 객잔이 유난히 평화로워.
겉보기에 제일 약해 보이던 인물이 제일 셌던 장면 들려줘. 객잔 단골 할머니한테도 전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