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전기를 빌려 가셨던 손님이 반납하러 오셨습니다. 책갈피가 한 군데만 꽂혀 있었죠. 바그너와 갈라서는 대목이더군요. 오래 따르던 선배와 요즘 사이가 멀어졌는데, 그 장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니체는 이십 대에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처음 만났습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나는 거장이었죠. 니체는 그 음악과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더군요.
바젤에서 교수로 일하던 시절, 니체는 루체른 근처 트립셴에 있던 바그너의 집을 자주 찾았습니다. 첫 책 『비극의 탄생』의 서문도 바그너에게 바치는 글이었죠. 앞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적었는데, 그 책에서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그리스 비극을 되살릴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1876년, 바그너의 작품을 올리는 첫 바이로이트 축제가 열렸습니다. 니체는 그 자리에 갔다가 크게 실망하고 일찍 떠났다고 하죠. 예술이 사교와 과시의 장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고요.
그 뒤로 두 사람은 생각이 점점 갈라졌겠죠. 니체는 바그너에게서 자기가 넘어서야 할 것들을 보기 시작했죠. 말년에는 『바그너의 경우』라는 책까지 써서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니체는 말년의 『이 사람을 보라』에서 트립셴의 날들을 회고하며, 그 시절을 삶에서 결코 내주고 싶지 않은 날들로 꼽습니다.
갈라섰다고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은 거죠. 존경했던 시절도, 갈라선 결정도 모두 제 이야기로 끌어안은 겁니다. 앞서 아모르 파티를 적었는데, 니체는 그걸 이 관계에서도 실천한 셈입니다.
너를 길러 준 자를 넘어서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그에게서 받은 것으로 네 길을 내는 것, 그것이 가장 깊은 감사다.
그 시절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배운 것은 여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다른 길을 가는 게 실패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제 생각을 만들었다는 뜻일 수 있죠. 존경과 동의를 구분하십시오. 사람을 존경하면서도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죠.
그 손님은 반납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선배를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웠는데, 니체도 그 시절을 아꼈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놓였다고요.
존경하던 사람과 다른 길을 걷는 날은 누구에게나 올 겁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것을 지우지 않고 품은 채, 그것으로 제 길을 따로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