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책 한 권을 석 달째 연장하시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반납일마다 오셔서 다시 연장하시죠. 한번은 제가 여쭈었습니다. 어려우시냐고요. 손님이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하루에 두 쪽씩만 읽는다고, 그게 이 책 읽는 법 같다고요.
그 손님은 모르셨겠지만, 니체가 정확히 그렇게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니체는 『아침놀』에 나중에 서문을 덧붙였습니다. 그 끝자락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요.
니체는 자신이 문헌학자였다는 걸 떠올리며, 문헌학을 "느리게 읽는 기술"이라고 부릅니다. 금 세공사가 금을 다루듯 섬세하게, 서두르지 않고 읽는 기술이라고요.
그러고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적어 둡니다. 천천히, 깊이, 앞뒤를 살피며, 속뜻을 품고, 문을 열어 둔 채, 섬세한 손가락과 눈으로.
니체는 그 시대를 서두름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무엇이든 빨리 끝내려 하고, 책도 금방 해치우려 한다고요. 그런 시대일수록 느리게 읽는 기술이 더 귀하다고 했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빠릅니다. 앞서 짧은 영상 때문에 책을 못 읽겠다는 말을 적었는데, 니체가 이 시대를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해지더군요.
니체의 책은 특히 느리게 읽어야 합니다. 짧은 잠언 하나에 긴 생각이 접혀 있기 때문이죠. 빨리 읽으면 멋진 문장만 남고 뜻은 빠져나갑니다.
한 문장에서 멈춥니다. 그 문장이 무엇을 반대하고 있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죠. 앞뒤를 봅니다. 앞서 니체 명언 출처를 적었는데, 떼어 낸 한 줄과 앞뒤가 있는 문장은 뜻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제 삶에 대 봅니다. 이 말이 제게는 어떤 장면으로 떠오르는지요. 다시 읽습니다. 며칠 뒤 같은 대목이 다르게 읽히는 경험이 니체 읽기의 맛이죠.
빨리 읽는 자는 문장을 지나가고, 느리게 읽는 자는 문장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간 자만이 그 안의 방을 본다.
모든 책을 느리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책 빨리 읽는 법을 적었는데, 정보를 찾는 책은 빠르게 훑어도 되죠. 다만 제 생각을 바꿀 책이라면 니체의 부탁을 따를 만합니다.
그 손님께 『아침놀』 서문의 그 대목을 보여드렸습니다. 한참 보시더니 웃으셨죠. 이제 연장하는 게 덜 미안하겠다고요.
빠른 세상에서 느리게 읽는 건 작은 고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제 생각을 바꿀 책 앞에서만큼은 속도를 늦추고, 한 문장씩 제 안에 방을 들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