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하면 콧수염 난 무서운 얼굴만 떠오른다는 손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 끝부분을 읽다가 소리 내어 웃으셨죠. 한 대목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니체가 웃으라고 하네요?
맞습니다. 니체는 생각보다 웃음을 아낀 사람이었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더 높은 인간들에게 말합니다. 앞서 그 손님들을 적었는데, 차라투스트라가 그들에게 남긴 당부가 바로 웃음이었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웃는 자의 왕관, 장미 화환의 왕관을 나 스스로 머리에 썼고, 나 스스로 내 웃음을 성스럽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거듭 말하죠. 너희 더 높은 인간들이여, 웃음을 배워라!
제3부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에는 더 강한 문장도 있습니다. 한 번도 춤추지 않은 날은 잃어버린 날로 여기자. 웃음 하나 데려오지 않은 진리는 모두 거짓이라 부르자.
니체에게 웃음은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시험하는 기준이었죠. 너무 무겁기만 한 진리는 사람을 짓누르고 굳게 만든다는 겁니다. 앞서 중력의 영을 적었는데, 웃음은 그 무게를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니체가 말한 웃음은 남을 비웃는 웃음이 아닙니다. 앞서 나를 깎는 농담 버릇을 적었는데, 저를 낮추는 웃음도 아니었죠.
무거운 것을 지나온 뒤의 웃음에 가깝습니다. 고통을 모르는 가벼움이 아니라, 고통을 알고도 그 위에서 웃을 수 있는 가벼움이요. 앞서 즐거운 학문 뜻을 적으며 회복기의 즐거움을 말했는데, 같은 결의 웃음입니다.
심각함으로 무장한 자는 쉽게 부러진다. 웃을 줄 아는 자만이 휘었다가 다시 선다.
너무 진지해질 때 한 걸음 물러나 보십시오. 지금 이 일이 웃을 여지가 하나도 없는지요. 하루에 한 번 웃을 일을 찾으십시오. 니체는 춤추지 않은 날을 잃어버린 날이라 했습니다. 웃음도 그렇겠죠. 남을 깎지 않는 웃음을 고르십시오. 그 웃음이 니체의 왕관입니다.
그 손님은 그 대목을 휴대폰에 적어 가셨습니다. 요즘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고요. 무서운 철학자에게 웃으라는 말을 들으니 더 웃기다고 하시더군요.
무거운 날은 또 올 겁니다. 그래도 저는 그 무게 위에서 웃는 법을 하나씩 배우고, 그 웃음을 제 왕관으로 스스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