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서운한 얼굴로 앉아 계셨습니다. 오랜 친구에게 쓴소리를 들었다고요. 친구라면 편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차라투스트라』의 한 장을 펼쳐 드렸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에 이 제목의 장이 있습니다. 니체가 우정을 가장 또렷하게 말한 대목이죠.
그 가운데 유명한 문장이 이겁니다. 너는 너의 벗 안에서 너의 가장 좋은 적을 가져야 한다. 네가 그에게 맞설 때, 네 마음은 그에게 가장 가까워야 한다.
처음 들으면 이상하죠. 벗과 적은 반대말 같으니까요. 하지만 니체가 말한 적은 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를 시험하고 맞서 주는 사람이죠.
늘 맞장구만 쳐 주는 사람 곁에서는 자라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반대해 주는 사람, 제 약한 곳을 짚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자리를 넘어설 수 있죠. 그러니 좋은 벗은 좋은 적의 역할까지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맞설 때 마음은 가장 가까워야 한다는 거죠. 미워서 맞서는 게 아니라 아껴서 맞서는 겁니다.
같은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도 묻습니다. 너는 잠든 벗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고요. 그 얼굴은 거칠고 불완전한 거울에 비친 너 자신의 얼굴이라고 하죠.
벗을 이상화하지 말라는 말로 읽힙니다. 벗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저를 보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니체는 벗에게 위버멘쉬를 향한 화살이자 동경이 되어 주라고 덧붙입니다. 앞서 위버멘쉬 뜻을 적었는데, 서로를 더 멀리 쏘아 보내는 관계가 니체가 그린 우정이었습니다.
네 곁에서 고개만 끄덕이는 자를 벗이라 부르지 마라. 네가 넘어지려 할 때 너를 밀어 올리는 손, 그것이 벗이다.
쓴소리를 바로 밀어내지 마십시오.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아껴서 나온 말인지 먼저 보는 겁니다. 저도 벗에게 정직해지십시오. 듣기 좋은 말만 건네는 건 편하지만, 벗을 자라게 하지는 못하죠. 맞설 때 마음을 가까이 두십시오. 이기려는 말이 아니라 같이 가려는 말로요.
앞서 어른이 되어 친구 사귀기를 적었는데, 그 우정이 오래가려면 이런 맞섬도 견딜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 손님은 그 장을 끝까지 읽고 한참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다 휴대폰을 들고 열람실 밖으로 나가셨죠. 돌아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친구한테 고맙다고 했다고요. 친구가 놀라더라고.
편한 관계는 소중합니다. 그래도 저는 저를 시험해 주는 벗을 귀하게 여기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벗이 되도록 제 말을 다듬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