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에서 손님 하나가 무협을 읽다가 웃더라.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대목이었어.
걱정 안 되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 "이제 뭐 주울까." 떨어진 데서 비급이나 영약을 주울 거라는 거야.
나는 그 말에 웃었어. 맞는 말이거든. 무협에서 절벽은 죽는 자리가 아니라 줍는 자리야.
무협 기연은 왜 항상 동굴에 있냐는 얘기를 전에 적었어. 그 동굴에 어떻게 가냐면, 대개 떨어져서 가.
쫓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물에 빠져서 살아. 정신 차려 보면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야. 거기 동굴이 있고, 동굴 안에 옛 고수의 유골이랑 비급이 있어.
그러니까 절벽 추락은 기연으로 가는 문이야. 문을 열려면 떨어져야 해.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어.
하나, 세상에서 끊겨. 떨어지면 다들 죽은 줄 알아. 추격도 끊기고, 원수도 손을 놔. 주인공한테 숨 돌릴 시간이 생기는 거지.
둘, 아무도 못 가는 데로 가. 걸어서 갈 수 있는 데면 이미 누가 가봤겠지. 떨어져야만 닿는 데라서 보물이 남아 있는 거야.
셋, 바닥을 찍어. 이야기 쪽에서 보면 주인공이 제일 낮은 데까지 떨어지는 순간이야. 거기서 올라오면 딴사람이 돼 있어.
재밌는 건 독자도 이걸 다 안다는 거야. 그래서 걱정 대신 기대를 해. 객잔 손님처럼.
웹소설 무협 클리셰 정리할 때 비웃을 게 아니라 약속이라고 했었지. 절벽 추락이 딱 그 약속이야. 독자랑 작가가 떨어지면 뭔가 있다는 걸 같이 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 잘 쓴 글은 가끔 그 약속을 비틀어. 떨어졌는데 아무것도 없어. 그냥 다쳐서 혼자 기어 올라와. 그런 글은 오래 남아.
나는 무협을 하나도 모르던 채로 이 세계에 떨어졌잖아. 절벽은 아니었지만.
떨어지고 나서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어. 근데 지금 객잔을 하고 있어. 떨어진 데서 뭔가를 줍긴 주운 거지.
떨어지고 나서 이야기가 확 바뀐 장면 있으면 들려줘. 나도 떨어진 놈이라 그런 얘기에 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