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읽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 주인공이 큰 세가 대문 앞에 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이름이 적힌 종이를 문지기한테 내밀어. 문지기가 그걸 들고 안으로 들어가.
한참 뒤에 문이 열려. "들어오시랍니다."
그 종이가 명첩이야. 이름을 적은 종이라는 뜻이지. 옛날에 실제로 쓰던 거래. 지금으로 치면 명함 같은 거라고 하더라.
무협에서 큰 문파나 세가를 그냥 찾아가면 실례야. 먼저 명첩을 들여보내서 내가 누군지 알려야 해.
산문 얘기를 전에 적었어. 문파 들어가는 문 앞에서 벌어지는 일. 명첩은 그 문 앞에서 처음 내미는 인사야. 받아줄지 말지는 안에서 정해.
그러니까 명첩을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긴장돼. 받아주면 손님이고, 안 받아주면 쫓겨나.
명첩에서 중요한 건 이름이야. 누구 이름이 적혀 있느냐.
이름난 문파 사람이면 금방 문이 열려. 이름 없는 낭인이면 한참 기다려야 해. 그래서 무협에선 누구 이름으로 명첩을 내미느냐가 중요해. 천거 얘기를 전에 적었는데, 남 추천하기가 부담이라는데 무림엔 보증이 따라붙었다고. 명첩에 소개한 사람 이름이 같이 적혀 있으면 그게 보증이야.
반대로 명첩을 찢거나 던져버리면 그건 모욕이야. 너 같은 건 상대 안 한다는 뜻이지.
무협에서 그 장면은 대개 싸움의 시작이야. 체면 얘기 했었는데, 강호에서 체면은 목숨만큼 무겁다고. 명첩을 찢는 건 그 체면을 찢는 거야.
객잔에 처음 온 손님이 이름을 적은 쪽지를 내민 적이 있어. 단골 소개로 왔다고. 그 쪽지에 단골 이름도 같이 적혀 있었지.
나는 좀 웃었어. 객잔은 그런 거 없어도 들어오면 되는데. 근데 그 쪽지를 버리지 못하고 장부 사이에 끼워뒀어. 지금도 있어. 그 손님은 이제 단골이 됐고.
소개장이나 명첩 하나로 문이 열린 장면 기억나면 들려줘. 객잔 문은 그런 거 없어도 열려 있지만.